[Life]50회 맞은 미식가모임 ‘구어메서클’

  • 입력 2008년 3월 14일 03시 01분


한 대기업 회장은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보내왔다. ‘당신이 꼭 가서 맛봐야 할 식당을 발견했다’는 메모가 들어 있었다. 미국 출장길에 영어로 쓰여 있는 요리책을 샀다며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

‘귀하의 인격과 실력 향상을 위하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글이 적혀 있다.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의 총주방장 박효남 상무. 박 상무에게 이처럼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프랑스 식당 ‘시즌즈’의 미식가 모임 ‘구어메서클’의 단골 고객들이다.

시즌즈가 1996년부터 매년 4차례 열어온 구어메서클이 21일로 50회를 맞는다. 구어메서클은 계절별로 음식이 바뀌기 전에 새 음식을 단골들에게 미리 서비스하는 음식모임이다.

차장 때부터 구어메서클의 음식을 담당한 박 상무는 한국인 요리사로서는 처음으로 2006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농업훈장’을 받은 유명한 프랑스 요리사다. 그는 “구어메서클이 50회를 맞게 된 것은 고객들의 열성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모임에서는 고객이 ‘제보’한 덕택에 메뉴 소개카드에 고객 이름을 새기는 이벤트를 열었다. 시장, 마트, 백화점을 다닐 때 그들의 머릿속은 요리 아이디어를 개발하느라 바쁘다.

지난해 봄 구어메서클 때는 딸기나무가 심어진 작은 화분을 식탁에 올려 고객이 직접 따먹을 수 있게 했다. 어느 여름에는 접시마다 포도 넝쿨을 장식해 8명이 한 식탁에 둘러앉으면 작은 포도밭에 온 듯한 느낌이 들도록 하기도 했다. 이 모임이 유명해지다 보니 와인회사 등 협찬을 하겠다는 업체도 많아졌다.

호텔가의 ‘갈라 디너’는 40만 원대를 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모임에선 와인 값을 제할 수 있어 20만 원이 채 안 된다. 50회 모임에서는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로부터 난 꽃이 그려진 접시를 협찬받는다.

초기에는 파티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이나 대기업 오너가 많았다. 식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요즘은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와 일반 직장인도 많이 참가한다.

이영미 부지배인은 “단골 고객은 봄 모임이 끝난 뒤 여름 모임을 예약한다”며 “이 모임을 위해 지방이나 해외출장 스케줄을 조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고급 식당은 차가운 음식은 차갑게, 더운 음식은 뜨겁게 대접하기 위해 애쓴다. 시즌즈는 주방이 홀에 가까운 곳에 있어 이 서비스가 확실하다. 12년 동안 손발을 맞춰 온 주방과 홀 직원들의 팀워크도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요소다.

이들은 말한다. “100회를 넘어 1000회까지도 구어메 서클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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