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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권장도서 100권]<97>체호프 희곡전집-안톤 체호프

입력 2005-07-26 03:09업데이트 2009-10-0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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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근대 사실주의 연극이 출현한 지 한 세기를 넘긴 지금, 그 시대의 극작가 가운데 안톤 체호프의 희곡만큼 세계적으로 꾸준히 공연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입센, 스트린드베리, 하웁트만, 버나드 쇼 같은 쟁쟁한 거장이 근대 연극의 북두좌를 이뤘다면, 오늘날 체호프는 이들로부터 성큼 떨어져 북극성의 자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호프는 모두 7편의 장막극과 10편의 단막극을 썼는데, 이 중에서 1896년부터 사망하기 바로 전 해인 1903년 사이에 쓰인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동산’ 등 ‘4대 장막극’이 가장 널리 읽히고 공연되는 희곡이다.

젊은 예술가의 열정과 사랑, 가슴 아픈 좌절을 그리고 있는 ‘갈매기’는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희곡이다. 이 작품은 1896년의 초연에서 대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2년 뒤 스타니슬라프스키라는 걸출한 연출가에 의해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획기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체호프의 독특한 극작술이 본격적으로 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무대 커튼 위에 날개를 펼치고 있는 갈매기의 그림은 지금도 러시아 연극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바냐 아저씨’와 ‘세 자매’는 가슴속에는 고귀한 이상을 품었지만 현실의 질곡과 세월의 풍화작용 속에서 빛이 바래 가는 섬세한 영혼을 보여 준다. 실제로는 자신의 고향을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면서 항상 ‘모스크바로 가자!’고 읊조리는 세 자매의 모습이 안쓰럽지만 그것은 닿을 수 없는 낙원을 희구하며 현실을 견디어 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체호프는 서글픈 운명의 등장인물을 보여 주면서도 자신의 작품이 ‘희극’이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작가의 주장에 명실 공히 부합하는 희곡은 마지막 장막극인 ‘벚꽃동산’이다. ‘벚꽃동산’의 낙천적인 옛 지주들은 자신들의 영지가 경매로 팔려나가는데도 소풍과 파티로 소일하며 과거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역사적인 격변을 떠들썩한 시골 빚잔치의 풍경 속으로 담아낸 작가는, 무대를 텅 비워 놓고 벚나무 동산을 떠나간 자신의 주인공을 따라 그 다음 해에 이 세상을 떴다.

그의 희곡은 특별한 사건이 없이 일상의 저변에 흐르는 미묘한 심리의 흐름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행동이 없는 희곡’, 또는 ‘분위기의 희곡’으로도 불린다. 이 밖에도 등장인물 간의 의사소통의 단절, 빈번한 침묵, 다양하고 서정적인 음향 효과, 비극적 요소와 희극적 요소의 절묘한 결합 등등이 체호프 희곡의 중요한 특징으로 거론된다.

체호프는 단편소설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단편 작가로서의 체호프가 위대한 거장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힐 수 있다면, 극작가로서의 체호프는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체호프는 근대 이전의 극작술이 문학으로 성취할 수 있는 정점을 보여 주었으며, 현대 연극이 가야 할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이정표를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국내에 나와 있는 나름의 장단점을 갖고 있는 여러 종류의 번역서 가운데 ‘벚꽃동산’(오종우 번역)이 체호프 전공자의 번역이라는 점에서 눈에 띈다. ‘체호프 희곡전집’(이주영 번역)은 체호프의 모든 희곡을 담고 있다.

박현섭 서울대 교수 노어노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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