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그때 그시절엔]<1>소설가 이만교씨와 통기타

  • 입력 2004년 7월 25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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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이범용(왼쪽) 한명훈 듀엣이 통기타를 치며 ‘꿈의 대화’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이 노래로 대상을 받았다.-동아일보 자료사진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이범용(왼쪽) 한명훈 듀엣이 통기타를 치며 ‘꿈의 대화’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이 노래로 대상을 받았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장발과 통기타와 롤러스케이트…. 오늘날 신세대에겐 아득한 옛날이야기겠지만 1970, 8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이른바 ‘7080’ 세대는 동시대를 풍미했던 이 같은 문화적 아이콘들에 열광했다. 최근 7080세대가 문화 소비층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90년대 이후 단절된 자신들의 문화를 추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이 세대의 새로운 문화 주장으로도 보인다. 7080세대 문화예술인이 들려주는 추억 속의 문화 아이콘 이야기를 매주 월요일 싣는다.》

공부보다도 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때는 그런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악기 좀 다룰 줄 아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대학가요제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공상에 빠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부터 열심히 해야 할 터인데, 공부는 뒷전이고 노래만 열심히 불렀다.

친구들은 보컬 밴드를 만들기까지 했다. 악기를 전혀 다룰 줄 몰랐던 나는 친구들이 연습실을 옮길 때마다 ‘악기 다루는 일’을 대신 해주며 기타를 배우려고 애썼다. 정작 녀석들에게 먼저 배운 것은 담배였지만, 어쨌든 월세 5000원 하는 과수원 과일 창고에서 연습을 했다.

친구들의 첫 번째 연습곡은 ‘나 어떡해’였고, 나는 구석에 쭈그려 앉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익혔다. 지금도 그때 배운 ‘구름과 나’, ‘꿈의 대화’,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같은 노래를 들으면 뿌연 담배 연기로 몽롱했던 그때 그 과수원 창고 안의, 철없어 불안했던 10대 때 풍경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물론 친구들은 가요제에 나가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대학입시를 치르고 나서 보면 정작 친구들 중에 노래 솜씨가 가장 좋은 녀석이 진학에 실패하기 마련이었다. 또한 캠퍼스엔 최루탄이 난무했다. 대학가요제에 참여하기 위해 대학입시를 치렀던 우리는 정치현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번엔 수업거부를 하고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부지런히 등교해야 하는 형편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의 애창곡 또한 어느덧 ‘새’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사반의 십자가’ 등과 같은 곡들로 바뀌었다. 과수원 창고에서 익힌 서툰 통기타 실력은 민중가요를 익히고 부르기엔 충분하고 흡족했다.

이후 통기타는 자취생활을 전전하던 20대 내내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마도 노래 나라의 영토는 언어와 침묵의 나라 중간 국경쯤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노래든 소리 내어 부르고 나면 아주 깊은 고요가 그 뒤를 감싼다. 나는 노래 끝에 느껴지는 그 깊은 적막감이 좋았다. 언어는 너무 시끄럽고 침묵은 너무 적막한데, 그 중간지대로 들어가는 길이 통기타 하나면 가능했다.

그리하여 그것이 대학가요였든 민중가요였든 통기타를 치며 불렀던 노래 속에는 내 젊은 날의 순정한 한숨과 방황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이제 통기타는 순정했던 시절의 추억거리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보면, 통기타를 치며 ‘나 어떡해’를 부르던 20대의 청순한 ‘가리봉 동호회’는 어느덧 노래방 기계를 갖다 놓고 ‘닐리리 맘보’를 흐드러지게 부르는 아줌마 아저씨들로 바뀌어 있다. 또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주인공은 단란주점 밀실에서 발가벗긴 채 지폐를 입에 물고 윤수일의 ‘아파트’를 연주하고 있다. 특히 나와 내 친구들이 이 영화의 직접적 소재와 배경이 되고 있는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더욱 깊이 공감 갔던 장면이기도 하다.

이제 통기타 문화는 사라지고 노래방과 단란주점 반주가 대신하고 있다. 기타 반주로 노래 부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낡은 통기타는 방 한 구석에 오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걸려 있을 따름이다. 그러다가 내가 간혹 세파에 지쳐 소리 지르거나 문을 세게 닫거나 할 때면 파르르 현을 떤다. 그럴 때, 나는 통기타를 내려 품에 안아본다. 청순한 연애의 추억을 안고 함께 늙어가는 아내 같은 통기타. 둥그렇게 둘러 앉아 친구의 나직한 기타와 노래 솜씨에 귀 기울이던, 애잔한 그 순간들이 그 속에 있다.

▼이만교씨는…▼

△1967년생 △배재대 국문과 졸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부문 당선(1992년),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늘의 작가상’ 수상(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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