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캘린더]입센 서거 100주기 ‘유령’ 공연

  • 입력 2006년 6월 2일 04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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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 서거 100주기를 맞아 공연중인 ‘유령’. 사진 제공 산울림
입센 서거 100주기를 맞아 공연중인 ‘유령’. 사진 제공 산울림
잔재주가 반짝이는 가벼운 연극은 넘쳐나도, 제대로 된 정통 고전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 요즘, 사실주의 희곡의 전범으로 꼽히는 헨리크 입센의 희곡을 원로 연출가 임영웅이 교과서적으로 연출한 ‘유령’은 그래서 더 반가운 작품이다.

입센 서거 100주기를 맞아 서울 홍대앞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유령’은 ‘인형의 집’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그의 대표작.

‘인형의 집’에서 가정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오는 여주인공 노라가 과감히 사회적 관습에 맞섰다면, 2년 후(1881년)에 발표된 ‘유령’은 의무와 사회 관습에 매여 사는 알빙 부인을 통해 ‘집을 뛰쳐나오지 못한 노라’는 과연 어떤 운명과 마주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유령’에서 다루어진 성병, 간통, 자유연애, 근친상간, 안락사 등 당시로서는 금기였던 파격적인 주제의 상당 부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다.

알빙 부인은 마음에 품고 있던 만데르스 목사 대신 집안의 성화로 부유한 남편 알빙의 조건만 보고 결혼한다. 그녀는 방탕한 삶을 사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결혼의 속박을 깨고 싶어했지만 끝내 사회적 관습과 의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모양처의 가면을 쓰고 평생을 산다. 하지만 죽은 남편을 기리기 위한 보육원 개원식을 하루 앞두고 감춰뒀던 집안의 어두운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제목 ‘유령’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현재의 삶을 속박하는 사회적 관습과 굴레, 지배계층인 남성의 허위의식, 남의 이목을 의식한 위선과 가식, 고정관념 등을 모두 상징한다. 입센이 살았던 19세기에 존재했던 ‘유령’은 21세기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고전(古典)의 힘은 이렇듯, 늘 ‘현재형’이라는 것. 100년 전 옷을 걸치고 있을지언정, 한 꺼풀만 벗기고 나면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어느새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극중 알빙 부인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유령일지도 몰라요. 조상한테서 물려받은 것들, 낡은 관습과 편견, 기억도 나지 않는 추악한 죄, 우린 그런 것들에 눌려 살지요. 아마 온 나라 안에 유령이 가득 살고 있을 거예요. 그 유령들을 확 쓸어버리고 환한 빛을 볼 수 있다면!”

전무송, 이혜경, 이영석, 전현아 안성현 등 출연. 7월2일까지. 화수목 7시반, 금 토 3시 7시반, 일 3시. 2만∼3만원. 02-334-5915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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