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이기철 ‘시는 삶의 양식’

  • 입력 2006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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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의 순금을 얻기 위해 생애를 바친다

집중하고 천착하라

얻은 것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생각하는 시간은 귀중하다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간 사람

소금바다를 헤매다 죽은 어부

볍씨 뿌리고 논 위를 스치는 구름 그림자를 바라

보던 농부

그 모든 인간은 아름답고 현명하다

누가 네 살의 강물에 다시 발을 담글 수 있는가

그 가슴이 종달새와 함께 노래하고

그 마음이 들판의 송아지와 함께 거리의 악사가 되는,

누가 다섯 살의 햇살 속으로 날아갈 수 있는가

노랑나비와 줄파랑새의 친구가 되어

동풍 속을 끝없이 달려가는,

인간의 마지막 희망은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두운 흙에서 방향芳香으로 피어나는 풀꽃

그것이 인간의 희망이고 염원이다

나는 이 염원을 빌어 시를 쓴다

시는 내 삶의 양식이다

― 시집 ‘정오의 순례’(애지) 중에서

논물이 제 가슴 스치는 구름을 흘려보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꽃잎이 노랑나비를 떠나보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여행가가 세계를 여행하고도 천하를 그대로 두고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가을잎은 썩어 봄잎이 되고, 웅덩이의 물은 올라 구름이 되니, 낡은 것이 새것이고 낮은 것이 높은 것은 아닌가? 세월은 풍경처럼 스쳐 가지만 ‘나’는 남으니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삶에서 ‘순금의 생각’을 제련하지 못한다면 태양은 얼마나 어둡고, 꽃잎은 얼마나 쓸쓸한 것이랴.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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