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서상영 ‘별밥’

  • 입력 2006년 8월 1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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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밥 - 서 상 영

우물로 내려와서 목욕하던 별들은

엄마가 바가지로 물을 퍼서 물동이에

담을 때, 달아나지도 않았다

그저 헤헤거렸다

엄마가 인 동이물에선 첨벙첨벙

별들이 물장구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살구나무쯤 와서는

슈슈우- 슈슈 하늘로 다투어

날아갔다

그래서 엄마가 해놓은 아침밥엔

늘 별은 없고

노란 별가루만 섞여 있었다

별가루가 너무 많아 오래 씹어야

삼킬 수 있는 날도 있었는데

그때 나는 아직 어리고 무식해서

그걸 옥수수밥이라고 불렀다

- 시집 '꽃과 숨기장난'(문학과지성사) 중에서

별만큼 목욕을 좋아하는 족속이 또 있을까. 손거울만 한 우물도 실뱀 같은 개울도 마다 않고 내려와 찰박이던 별들, 온몸을 씻고 ‘슈슈우- 슈슈’ 반딧불 데리고 하늘로 되돌아가던 유년의 별들 선연하다. 그러나 이제 별들이 입고 돌아갈 빛부신 옷들을 누가 숨겨 놓은 것일까. 뭇별들을 붙잡아 매연 속에 가로등을 세우고 자동차 불빛을 박아 땅이 하늘보다 밝은 도시의 하늘엔 별빛이 성글다. 도심에서도 한 달에 한 번쯤 모든 문명의 불을 끄고, 하늘 가득 빛나는 ‘별밥보기 날’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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