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는 비었다.
따뜻한 봄날이다.
미풍이 불고 있다.
죽기 싫은 날이다.
할머니 발걸음은 가볍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
유모차 바퀴가 구름 위에서
도르륵도르륵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가벼운 봄날이다.
얼마 전부터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하느님이 리어카에 거름을 가득 싣고
유모차 뒤를 따라가고 있다.
- 시집 ‘흑백다방’(열림원) 중에서》
눈부신 봄날, 지팡이 대신 유모차 밀며 봄맞이 나오셨구나. 머리 굵은 손자들 새 새끼처럼 풍기어 나갔지만, 오늘은 왠지 아쉽지 않다. 발그레한 양 볼에 복사꽃 핀다. 구불구불 여든아홉 골목길 빠져나간 할머니, 후울쩍 유모차에 올라타신다. 도르륵도르륵 밀더니 까르르까르르 오시리라. 하느님 싣고 가는 저 거름도 남김없이 꽃이 되고 남김없이 잎이 되리라. 아무도 죽기 싫은 이 환한 봄날.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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