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세계 스포츠 축제, 유니폼-의상 경쟁부터 후끈… 런던 패션올림픽 불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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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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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휠라 빈폴, 伊-아르마니 프라다, 美-랄프로렌
英-스텔라 매카트니, 獨-보그너 대표선로 출전

약 보름 앞으로 다가온 2012 런던 올림픽. 이번에는 선수들의 멋진 경기 장면뿐 아니라 스타일에 집중해도 좋을 것 같다. 이탈리아(왼쪽) 선수들은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스포츠위어 라인 ‘EA7’을 입고, 미국(오른쪽) 대표 선수들은 거장 랄프 로렌의 손길을 거친 유니폼을 입을 예정이다. 아르마니·랄프로렌
약 보름 앞으로 다가온 2012 런던 올림픽. 이번에는 선수들의 멋진 경기 장면뿐 아니라 스타일에 집중해도 좋을 것 같다. 이탈리아(왼쪽) 선수들은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스포츠위어 라인 ‘EA7’을 입고, 미국(오른쪽) 대표 선수들은 거장 랄프 로렌의 손길을 거친 유니폼을 입을 예정이다. 아르마니·랄프로렌

‘조르조 아르마니, 프라다, 스텔라 매카트니, 랄프 로렌….’

뉴욕이나 밀라노 컬렉션의 패션쇼 리스트가 아니다. 이들은 이달 27일(현지 시간) 열릴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을 유니폼을 만든 국가대표급 디자이너들이다. 쟁쟁한 글로벌 디자이너들이 자국의 패션 경쟁력을 뽐내기 위해 맞붙어 이번 올림픽은 ‘패션 올림픽’으로 불러야 할 듯하다.

각 나라의 패션 경쟁은 올림픽에 등장한 선수들의 모습이 전 세계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면서 시작됐다. 각 국가와 패션브랜드, 대표선수 모두 엄청난 홍보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각 국가는 선수들의 유니폼과 개막식 패션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사실 국가대표 선수단의 유니폼과 개막식 단복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역도, 수영, 펜싱, 체조 등 각 종목 선수 수백 명의 체형이 모두 제각각이라 일일이 맞춰야 한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치를 따지면 수십억 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일. 패션 올림픽의 금메달을 노리는 각국 디자이너들의 경쟁은 벌써부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아르마니와 프라다, 미국은 랄프 로렌, 영국은 스텔라 매카트니, 독일은 보그너, 한국은 휠라와 제일모직 빈폴이 ‘대표선수’다. 한편 재정 위기에 빠진 스페인은 돈을 아끼려 러시아 스포츠업체에 맡겼다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스타일 vs 애국심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기인 ‘유니언 잭’(영국 국기)의 상징성은 유지하되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 했어요.”

아디다스 SLVR의 단복을 입은 프랑스 마리암 수마레(육상·왼쪽)와 알렉시스 바스틴(복싱) 선수.
아디다스 SLVR의 단복을 입은 프랑스 마리암 수마레(육상·왼쪽)와 알렉시스 바스틴(복싱) 선수.
올 3월,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딸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아디다스와 함께 영국 대표팀의 새 유니폼을 공개했다. 유니언 잭을 푸른색 계열로 새롭게 해석해 심플하고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패션 올림픽의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애국심’이다. 국가의 상징물을 총동원해 누가 더 세련되게 소화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때로는 디자이너의 미(美)에 대한 열망이 국민의 애국심과 충돌을 빚기도 한다. 영국은 여왕 즉위 60주년 행사와 런던 올림픽 개최로 나라 사랑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러 스텔라 매카트니의 디자인이 도마에 올랐다. ‘유니언 잭에 빨간색을 돌려 달라’는 게 논란의 골자다.

애국심 하면 빠질 수 없는 나라가 한국. 대한체육회는 올해 처음으로 휠라에 올림픽 대표팀의 유니폼 디자인을 맡겼다. 유명 브랜드가 한국 올림픽 대표팀의 유니폼을 디자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휠라 디자이너들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모토를 세우고, 한국의 상징물을 찾았다. 김진홍 휠라 의류기획팀장은 “하회탈, 한글 등을 놓고 고민하다 외국인들이 고궁에 그려진 단청 무늬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고 말했다.
태극과 단청 무늬에서 영감을 받은 한국 선수들의 유니폼. 왼쪽부터 2012 런던 올림픽 대한민국 국가대표 이용대(배드민턴), 왕기춘(유도), 양학선(체조), 남현희(펜싱), 사재혁(역도), 김재범(유도) 선수. 대한체육회 제공
태극과 단청 무늬에서 영감을 받은 한국 선수들의 유니폼. 왼쪽부터 2012 런던 올림픽 대한민국 국가대표 이용대(배드민턴), 왕기춘(유도), 양학선(체조), 남현희(펜싱), 사재혁(역도), 김재범(유도) 선수. 대한체육회 제공
▼각국 개막식 입장 패션 쉿!… 스타일 순위 결판 앞두고 두근두근▼

휠라는 유니폼에 ‘태극’과 ‘단청 무늬’ 색깔을 적용했다. 사람의 몸과 태극 문양, 단청 무늬가 모두 곡선인 점에 착안해 의상에 다양한 곡선을 넣고 어깨에는 붉은색 그러데이션 곡선을 넣었다.

언뜻 보면 이탈리아 선수들의 옷은 스타일에만 집중한 듯하다.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스포츠웨어 라인인 ‘EA7’이 만든 유니폼과 액세서리 등 50여 개 물품의 색깔은 흰색과 미드나잇 블루 계열이 주를 이뤄 모던해 보인다.

하지만 아르마니식 ‘애국 디자인’은 재킷과 트레이닝복 상의 안쪽에 숨어 있다. 옷 안쪽에 황금색 필기체로 이탈리아 국가인 ‘마멜리 찬가’가 쓰여 있다. 폴로셔츠 깃 안쪽에도 찬가의 첫 구절을 넣어 깃을 올리면 누구나 볼 수 있게 했다. 특히 폴로셔츠는 왼쪽 소매에 빨간색, 오른쪽 소매에 녹색을 넣어 이탈리아의 삼색기를 표현했다.

개막식은 글로벌 ‘런웨이’

사람들은 올림픽 폐막식보다 개막식을 열심히 본다. 각 나라 선수단이 국기를 들고 입장하면 TV 자막으로 인구는 몇 명인지, 국내총생산(GDP)은 얼마나 되는지, 올림픽 역대 전적은 어떤지 소개된다. 선수들은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며 멋지게 경기장을 행진한다. 개막식장이 글로벌 ‘런웨이’로 변하는 순간이다.

한국 대표선수들이 개폐막식 때 입을 단복. 1948년 런던올림픽 단복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한국 대표선수들이 개폐막식 때 입을 단복. 1948년 런던올림픽 단복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이때 선수단의 스타일이 멋지면 두고두고 화제가 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 미국 대표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처음으로 미국 선수단을 위해 디자인한 ‘프레피 룩’ 스타일, 프랑스 선수단의 ‘파리 시크’ 패션은 화제를 불러모으며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프랑스 선수들은 베레모를 쓰고 하늘색 재킷 위에 코르셋처럼 두꺼운 빨간색 가죽벨트를 매 ‘실험적인 패션이지만 역시 프랑스답다’는 평을 들었다.

그래서일까. 올해 개막식을 장악하려는 국가들의 야심이 만만치 않다. 개최국 영국의 올림픽조직위원회와 개막식 의상 디자인을 맡은 ‘넥스트’ 측은 이를 ‘일급비밀’로 하기로 했다. 개막식 당일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골드 계열 재킷으로 전례 없는 깜짝쇼가 벌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미국의 랄프 로렌도 개막식 의상 디자인을 철저히 함구하다 10일(현지 시간) 깜짝 공개했다. 그동안 선수촌에서 입을 일상복과 폐막식용 디자인만 미리 선보였었다. 랄프 로렌은 개막식용 의상에 클래식하고 미국적인 모습을 담았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 대표단이 선보일 ‘런웨이 룩’도 기대를 모은다. 배드민턴의 이용대 선수, 수영의 박태환 선수, 리듬체조의 손연재 선수 등 스타급이 총출동할 예정인 데다 제일모직 빈폴이 특별히 만든 단복도 어느 때보다 세련됐다. 한국 선수들이 광복 이후 처음으로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던 역사적인 1948년 런던 올림픽. 이때 선수단이 어렵게 마련해 입었던 단복을 재해석했다. 디자인을 맡은 신명은 상무는 “1948년 런던 올림픽 단복이 올 초 문화재로 지정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무릎을 쳤다”며 “당시 선수단이 입었던 네이비 더블 버튼 재킷이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았다. 문화재가 된 단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재킷 색깔은 64년 전 한국 선수단이 입었던 옷의 네이비 컬러를 살리되 핏은 몸에 달라붙도록 디자인했다. 하의는 기존의 회색에서 흰색으로 바꿨다. 빈폴은 “선수 450여 명의 사이즈를 재고 맞추느라 비상”이라고 말했다.

패션 테러리스트?
화제의 중심에 선 나라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러시아 업체에 디자인을 맡겼다가 비난에 직면한 스페인 올림픽대표팀 의상. 가디언 홈페이지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러시아 업체에 디자인을 맡겼다가 비난에 직면한 스페인 올림픽대표팀 의상. 가디언 홈페이지
패션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가는 나라들과 달리 ‘국가 망신’이라며 논란이 이는 국가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 스페인은 최근 재정위기로 돈을 아끼기 위해 올림픽 대표선수 의상을 거의 공짜로 해주겠다는 러시아 업체에 맡겼다가 ‘국가 이미지까지 싸구려가 됐다’며 자국 디자이너들의 반발을 샀다. 스페인 올림픽조직위원회는 “러시아 업체의 제안으로 국민 세금 수백만 유로가 절약됐다. 스페인 디자이너는 아무도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지만 스페인 의상협회는 “이웃 나라는 아르마니가 디자인했는데 우리는 촌스러운 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니 국가적 망신”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선수들의 의상은 핑크색 재킷과 튀는 색깔의 스카프 덕분에 ‘화사하다’는 주장과 ‘그것이 바로 독일 패션감각’이라는 비꼬는 듯한 외부 평가가 혼재한다. 글로벌 패션업체 보그너가 맡은 만큼 두고 봐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스타 선수 덕에 화제가 된 곳도 있다. ‘번개’ 우사인 볼트가 속한 자메이카 육상팀이 ‘패셔니스타’ 팀으로 등극한 것이다. 자메이카의 전설적인 음악가 밥 말리의 장녀이자 디자이너인 세델라 말리가 푸마와 함께 육상팀 의상을 디자인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스타 디자이너 덕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 에르마노 셰르비노가 중앙아시아의 소국 아제르바이잔 대표팀의 디자인을 맡았다. 산유국으로 2020년 ‘바쿠 올림픽’을 유치하려 애쓰는 나라답게 의상까지 파격적인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한편 세계 패션 강자 프랑스는 조용하다. 선수들의 의상은 독일 브랜드인 아디다스가 도맡았다. 프랑스 명품업계 관계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는 각자 후원하는 경기가 따로 있고, 올림픽에는 큰 관심이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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