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절세가 재테크” 세무컨설턴트 뜬다

  • 입력 2003년 3월 20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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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 세무컨설턴트들이 아침에 열리는 회의를 위해 18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빌딩 사무실에 모였다. 왼쪽부터 류우홍 차장, 김성훈 차장, 김정수 차장, 허정준 과장, 권무일 과장.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삼성증권 세무컨설턴트들이 아침에 열리는 회의를 위해 18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빌딩 사무실에 모였다. 왼쪽부터 류우홍 차장, 김성훈 차장, 김정수 차장, 허정준 과장, 권무일 과장.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서울 시내 한 금융회사의 프라이빗뱅킹(PB) 센터 상담실.

14일 한 40대 중반의 여성이 상담을 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10억원을 물려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처리하면 되죠?”

“아이가 하나시죠? 나이는…20대 초반요? 벌써 애한테 해 놓는 건(상속하는 건) 무리고, 필요하면 지금 오피스텔 같은 거 하나 사주세요.”

“오피스텔요?”

“일단 합법적으로 세금을 내세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절세해야죠. 지금 오피스텔 작은 거 사 줘봐야 증여세 한 500만∼600만원만 내면 되잖아요. 나중에 뭘 하려고 해도 세무서에서 조사 나와서 돈 어디서 났느냐, 그럴 때 할 말이 있어야 하잖아요. 오피스텔에서 받은 월세가 자금이다, 그러면 되니까요.”

사회활동도 활발히 하는 이 여성 고객은 일주일 뒤 구체적인 계획안을 넘겨받기로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 여성고객이 상담을 한 사람은 PB에 소속된 세무 컨설턴트. 금융계 인사들은 금융자산 1억원 이상의 고객을 대상으로 개인 자산을 종합 관리해주는 PB에서 요즘 VIP고객들이 주로 의뢰하는 상담분야는 세무라고 말한다. 금융 주식 부동산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절세가 거의 유일한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세무 컨설턴트들도 ‘뜨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각 은행·증권사의 PB센터들은 국세청 또는 세무사 출신의 컨설턴트를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 세무 컨설턴트의 하루

삼성증권 PB센터의 류우홍 차장은 오전 8시면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빌딩으로 출근한다. 류 차장은 14년간 국세청에 근무하다가 2001년 현재 직장으로 전직했다. 전날 들어온 메일과 금융시장 동향, 뉴스 등을 인터넷으로 점검한 뒤 류 차장은 함께 일하는 세무 컨설턴트들과 아침 회의를 갖는다. 한 명의 세무 컨설턴트가 전날 고객과 상담한 내용은 이렇게 팀 회의를 통해 해결방안이 모색된다. 세무 컨설턴트가 한 명뿐인 곳에서는 판례나 예규 등이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회의가 끝나면 류 차장을 제외한 5명의 컨설턴트는 서울의 PB센터인 Fn아너스 종로타워지점, 광화문 지점, 강남 스타타워 빌딩의 테헤란지점, 타워팰리스지점, 청담지점 등으로 흩어진다.

류 차장은 오전 중 사무실에서 일을 처리한 뒤 오후에는 프라이빗 뱅커를 동반하지 않고 주로 혼자 고객을 만나러 다닌다. 고객 정보에 대한 비밀유지 때문이다.

류 차장이 상담하는 고객은 평균 20명 선. 10명과는 본격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나머지 10명은 곧 상담을 시작할 초기 단계 고객이다. 지방점포를 찾는 VIP 고객을 관리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지방 출장도 떠난다.

삼성증권의 전국 점포 수는 108개이며 이중 고액고객은 400명선. 이 가운데 세무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고객은 평균 자산 50억원 이상인 100여명이다.

컨설턴트들이 고객과 만나면 바로 세무 상담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일단 친밀해지는 게 관건이다. 세무상담 과정만큼 재산현황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컨설팅이 없기 때문에 고객들은 도움을 청하면서도 경계한다.

한 은행의 세무 컨설턴트는 “세금 상담을 하려면 고객의 전 재산 규모는 물론이고 개인 철학, 살아온 내력을 다 알아야 한다. 자식에게 얼마나 물려줄 생각인지는 물론이고 결혼은 몇 번 했는지, 내연 관계의 사람이 있는지, 혼외 자녀가 있는지까지 알아야 적절한 컨설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세법의 회색지대 찾기

삼성증권은 올해 초까지 국세청 출신 세무 컨설턴트 6명을 영입해 금융권에서 세무컨설팅에 관한 한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LG증권도 국세청과 한국투신을 거친 세무 컨설턴트를 올 초 스카우트했으며 동원증권 등도 채용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은행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9월 PB센터를 본격화한 조흥은행은 국세청 출신 인사를, 국민은행은 경쟁업체에서 PB 상담을 해 온 세무사 출신 컨설턴트를 지난해 하반기 영입했다. 국민은행은 올해 중 PB센터를 20여개로 늘리면서 세무 컨설턴트를 1∼2명 충원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올 들어 세무 컨설턴트의 숫자를 1명에서 3명으로 늘렸고, 하나은행도 기존 세무 담당자 한 명 이외에 추가로 한 명을 더 채용할 계획이다.

같은 세무 컨설턴트지만 증권업계냐 은행권이냐에 따라 업무 결과에는 차이가 있다. 증권업계는 법률상 컨설팅을 해 준 뒤 상담금액의 2% 한도 안에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소액 고객 100명보다는 고액 고객 한 명을 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은행권은 컨설팅 수수료를 받을 수 없다. 서비스 제공을 통해 고객의 거래은행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뿐이다.

컨설턴트들은 고객이 세무처리를 한 뒤 국세청으로부터 조사를 받을 때나 15년 공소시효가 지날 때까지 ‘안전’할 수 있는 절세방법을 찾는다. 누가 얼마나 더 세무법상 ‘회색지대’를 잘 발견해내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국민은행 이장건 세무사는 “세금은 아는 만큼, 연구한 만큼 줄어들게 돼 있다.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고객에게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 누가 어떤 상담을 받나

2000년대는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의미 있는 시기다. 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고도 성장기를 통해 형성된 개인 자산가층이 자신의 부를 대물림하는 시기이기 때문. 따라서 최근 PB에 몰리는 세무상담은 주로 증여와 상속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합리적으로 대비할 경우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대부분 자산가들이 이런 연습을 하지 못했다.

고객의 고민은 천차만별이지만 상담 패턴은 일정하다는 게 세무 컨설턴트들의 말이다. 상속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들, 딸, 손자 등 대상을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며느리가 싫으면 아들도 배제하고 딸에게 재산을 물려준다. 만일 아들이 이혼할 경우 상속된 재산은 다시 재분배된다.

상속해준 뒤 자식이 자신을 배신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부류도 많다. 그래서 재산을 물려주긴 하되 자신이 관리하는 방안을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절세의 수단으로 공익재단 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실천하는 고객은 드물다.

때로 부모가 대책을 세워놓지 않은 상태에서 병에 걸리면 자녀가 상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모 생전에 증여를 하면 대체로는 절세를 할 수 있기 때문에 1세대 고객을 잘 관리하면 2세대도 지속적인 고객이 된다.

#사례 1.

한 고객이 자녀에게 건물의 절반을 증여한 뒤 자신과 아들 명의의 건물을 130억원에 팔기로 계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시중은행의 PB센터를 찾아왔다. 세무 컨설턴트가 내용을 들여다본 결과 증여를 받은 뒤 1년 안에 팔면 기준시가가 아니라 현행 시가대로 양도세를 내게 돼 있었다. 계약을 깨더라도 위약금을 물지 않도록 계약해뒀던 이 고객은 은행의 컨설팅대로 매매계약을 파기하고 아버지 명의인 건물의 절반만 팔았다. 당시 절세된 금액은 6억원. 건물을 판 대금 60억원은 이후 이 은행에 맡겨졌다.

#사례 2.

한 노부인이 갑자기 부동산을 팔아 50억원이 생겼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으로 높은 세금을 내야 했던 이 부인은 한 은행의 세무사와 상담한 뒤 50억원으로 비과세 되면서 확정수익률을 주는 외화표시채권을 샀다. 때로 절세 시기를 놓친 고객에게는 세무 컨설턴트가 이처럼 국제 금융팀, 지점 등과 상의해서 해당 고객을 위한 특수 금융상품을 제안하기도 한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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