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흰머리 감상

  • 입력 2002년 5월 30일 14시 46분


흔히들 이마의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을 두고 인생의 계급장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자기 미화의 한 방편이 아닐까? 왜냐하면 같은 나이라 해도 이마에 주름살이 하나도 없고 머리도 검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정상적인 삶이라면 때가 되면 주름살이 하나 둘 늘어나 고랑을 만들고 머리도 희어지는 게 당연한 사실인데 우리들 모두는 큰일이나 난 듯이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인생의 끝인 양 걱정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인생의 계급장이 생긴 만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시달려와서 지금의 자리를 만들어 놓았지 않았는가? 그런 것은 생각지 않고 무조건 신세를 한탄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아이에게 흰 머리카락을 뽑아달라고 한 적이 있다. 내 손이 안 닿는 곳이기에 부탁했던 것인데 아이는 대가부터 바라는 게 아닌가? 한 개 뽑는 데 얼마라는 식으로 말이다. 요즘의 아이들이 영악한 것은 알았지만 머리가 세는 것도 서러운데 돈으로 수고한 셈을 하는 아이가 미워서 따끔하게 야단쳤지만 어쩔 텐가?

“그래, 너희들도 나이 들어 보아라. 그때 아빠의 심정을 알 테니까”라는 말로 말끝을 흐리고 말았지만 왠지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박응국

약사·45·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의료원 약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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