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속의 에로티시즘]담배회사 카멜의 광고

  • 입력 2002년 5월 2일 14시 15분


출연자들이 멱살잡이까지 하는 제리 스프링어 쇼를 소재로 삼았다.
출연자들이 멱살잡이까지 하는 제리 스프링어 쇼를 소재로 삼았다.
지금 미국의 담배 산업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담배를 마약으로 규정한 빌 클린턴 전 정부의 심한 압박이 불을 댕겼는데 1913년 탄생한 카멜 담배도 철퇴를 맞는 대열에 서 있다. 카멜은 말버러에 한참 밀리던 1986년, 낙타 얼굴을 한 ‘조카멜’이라는 일러스트레이션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리즈 광고를 통해 비로소 판매량 하향 곡선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10대에게 인기가 높았던 조카멜은 청소년들의 흡연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사용 불가 판결을 받고 1996년 자취를 감춘다. 이후 카멜은 일련의 키치풍 광고를 통해 여전히 젊은층 끌어안기에 신경을 쏟는 한편 그 안에 숨은 독설을 통해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꼬는 고단위 처방을 내린다.

저질 토크쇼인 제리 스프링어 쇼를 패러디한 광고 한 편을 보자. 한가운데 털 많은 짐승이 태연하게 앉아서 카멜을 피워 물고 있다. 그 뒤에는 그를 사랑하던 두 여자가 털 짐승을 차지하기 위해 머리 끄덩이를 잡아당기기 일보직전이고 건장한 두 남자가 그들을 뜯어 말리고 있다. 사회자는 화면을 응시하며 ‘난장판이군요!’ 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삼각 애정 관계의 폭로 현장에서 환호하고 있다. 뒤죽박죽 세상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제리 스프링어 쇼의 한 장면이다. 그 뒤죽박죽은 좌측 하단의 ‘발 큰 짐승(Bigfoot)의 괴이한 삼각관계’라는 카피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정말로 괴이한(bizarre) 세상 아닌가.

우측 상단에 있는, 담배 광고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경고문을 빗댄 우측 하단의 또 하나의 경고문은 ‘이 광고를 보는 사람이 고려해야 할 사항(Viewer Discretion Advised)’이란 제목 하에 TTB, BR, F와 같은 이니셜을 표기함으로써 마치 담배 속의 성분을 표시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TTB는 ‘Two Timing Bigfoot’, 즉 큰 발을 가진 털 짐승이 두 여자와 양다리를 걸치며 놀아났다는 것을 뜻한다. 발이 크다는 것은 미국에선 남자의 성기가 크다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마치 한국에서 코가 큰 남자가 그것도 크다고 하는 것의 미국식 표현이다. BR은 ‘Big Ratings’다. 시청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카멜의 인기가 높다는 것도 은연 중 나타낸다. F는 ‘Furballs’다. 이 역시 성적 의미가 농후한 표현이다. 표면적으론 배짱 부리고 앉아 있는 털 많은 짐승을 지칭하고 있지만 ‘ball’이 남자의 낭심이나 성교를 뜻하는 비속어라는 것은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처럼 성적 암시가 가득한 또 하나의 경고문은 무얼 뜻하는가? ‘담배는 당신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으로 대표되는 담배회사에 가해지는 압박에 대한 유머있는 저항의 표현이다. 털북숭이 괴물은 미국의 각종 매스컴을 통해 묘사되고 있는 담배 산업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그러나 그 괴물은 느긋하게 앉아 뱃심 두둑하게 카멜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멋진 괴물을 손에 넣기 위해 여자들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제리 스프링어 쇼야말로 이 세상이 끝까지 갔음을 보여 주는 인간사 말종의 쓰레기 프로그램이다. 겉으로는 외도나 삼각관계의 오해를 푼다는 목적으로 오해 당사자들끼리의 만남을 주선한다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으론 그 만남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격앙시키고 마침내는 폭력을 부르게 하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변태적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게 하여 시청률을 높이려는 술수가 훤히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이 광고는 제리 스프링어 쇼를 소재로 삼아 미국 사회엔 이처럼 허섭 쓰레기 같은 것이 한둘이 아닌데도 왜 유독 담배산업만 희생양으로 몰아붙이며 정부가 인기몰이에 나서느냐는 소리없는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제품에 관련된 메시지라곤 ‘강렬한 맛(Mighty Taste)’ 하나 뿐. 우리식 표현인 ‘따끔한 맛 좀 볼래!’라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닌지….

시가를 사용하여 자신의 인턴 사원을 성희롱했던 클린턴 정부에 의해 담배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후진국으로 하여금 담배소비를 늘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과 후진국과 담배산업, 그 역시 괴이한 삼각관계임에 틀림없다.김 홍 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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