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가볍지만 통쾌한 키치 이미지 '디젤 진'

  • 입력 2002년 3월 7일 14시 30분


디젤 진바지의 광고.가벼우면서도 야유하는 키치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디젤 진바지의 광고.
가벼우면서도 야유하는 키치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요즘 들어 못난 사람을 등장시키고 촌스럽고 모자란 이미지를 퍼뜨리는 광고들이 많아졌다.

아름다운 세상 속에 등장한 선남선녀가 마치 제품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 같은 마법의 세상을 보여 주는 것이 고전적 광고문법에 의거한 광고였다. 음지보다는 양지를 부각하고 촌스러움보다는 세련미를 강조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 관례를 깨뜨린 선두에 키치가 버티고 서 있다. 키치엔 좋은 취향(good tastes)에 대한 비꼼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는데, 그 정신은 정답이라고 인정되어 왔던 가치관에 딴죽을 걸면서 풍자의 날을 세운다. 키치가 더 이상 질 떨어지는 하위 미학이 아니라 대중미학의 주류로 자리매김되면서 당당한 미적 즐김의 대상이 된 이유도 그 점에 있다.

칸 광고제 TV·인쇄매체 양 부문 그랑프리를 석권함으로써 이미 세계적 수준의 크리에이티브를 입증받은 디젤 진(Diesel jeans) 광고는 키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예이다.

특히 에로티시즘의 요소를 키치를 통해 표현한 몇몇 광고들은 현대인의 가식적이고 비뚤어진 성 모럴을 맘껏 조롱한다. 두 편의 광고를 보자.

첫 번째 광고의 소재는 여객기이다. 스튜어디스 대신 등장한 멋진 근육질의 스튜어드가 누드로 서빙을 하고 있다.

쭉 빠진 여성과 근육질 남성은 미디어가 전파해온 성적 욕망의 원형질이다. 그 남자에게 달려드는 나이 든 여성들. 마치 남성들이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스튜어디스의 옷을 한꺼풀씩 벗기듯 알고 보면 여성의 내면 풍경 역시 소돔의 성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투다. 그에 비해 오른쪽 앞에 앉은 디젤 진 제너레이션으로 대변되는 젊은 두 여성은 그 아수라장의 난투극에 아랑곳 않고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또 한편의 광고에선 비정상적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그로테스크한 인물로 망가져 버린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 앞의 기다란 테이블 양쪽엔 풍선으로 된 섹스인형이 빽빽이 들어 앉아 있다. 변태적 성욕의 극점을 보여 주는 한 컷이다.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는 젊은 두 남자는 역시 디젤 세대를 대변하는데, 이런 우스꽝스러운 현실이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괴물같은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처럼 디젤광고는 키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과장, 광란의 요소를 에로틱한 소재와 접목시켜 디젤 특유의 그로테스크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그같은 ‘그로에로’의 미학을 통해 디젤 광고는 기성세대의 뒤틀린 성 모럴을 비꼬면서 디젤만의 젊고 신선한 이미지를 전파하려 한다. 즉 제품 자체의 기능적 특징보다는 브랜드의 정신을 통해 제품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키치는 아방가르드의 정신을 공유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방가르드가 반예술이라는 운동을 통한 저항 행위를 표출하는 반면 키치는 놀이를 통한 모독의 행위로 역문화의 정신을 드러낸다.

아방가르드가 잘 훈련된 특공대라면 키치는 도시락 폭탄을 들고 돌진하는 게릴라다. 키치는 그래서 가볍지만 통쾌하다.김 홍 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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