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속의 에로티시즘]임마누엘 웅가로 구두 '계산된 엽기성'

  • 입력 2002년 1월 24일 16시 19분


사드 백작의 ‘소돔 120일’을 보면 온갖 변태적 섹스와 고문 살인으로 가득한 악덕과 패륜의 일람표를 보는 느낌이 든다. 하드코어 엽기라 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왜 이런 글이 씌여질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인간의 내면엔 선한 감정 못지 않은 크기의 악마주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래에 하위 문화의 키워드가 된 엽기가 좋은 취향을 거부하는 악취미의 미학을 퍼뜨리면서 먹혀 들어간 것도 결국 인간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악마주의가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로티시즘에서의 엽기 취향이야말로 가장 변태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은밀할수록, 감추고 싶은 것일수록 정상으로부터 이탈하기 쉽다. 사드가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이번엔 광고로 증명해 보자.

먼저 임마누엘 웅가로 광고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발을 개가 핥고 있다. 여자의 얼굴 표정은 흔히 말하는 오르가즘에 이른 상태다. 수간(獸姦)을 뜻하는 소도미(sodomy) 코드를 활용했음이 한눈에 들어 온다. 제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소도미까지 끌어 온 파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쇠구슬이 촘촘히 박힌 구두와 개 목걸이가 변태적 성행위를 드러내는 기호로 작용한다. 치밀하게 계산된 비주얼이다. 좋은 느낌을 통해 제품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했던 기존의 광고 문법과는 한참 거리를 두고 있다.

아큐펑처 신발 광고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엔 사람이 신발을 핥고 있다. 마치 신발과 오럴 섹스를 나누는 듯한 이 광고는 악취미를 넘어서 역겹다. 브랜드 집착을 넘어서 브랜드 도착 증세를 보이는 듯한 비주얼이다. 이처럼 제품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변태적인 관계를 통해서 브랜드 이미지를 쌓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일컬은 ‘두려운 낯섬’이라는 언캐니(uncanny)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 불편한 감정이 역설적이게도 이미지를 인식시키는 데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광고에서 네거티브 어프로치(부정적 접근)는 일종의 터부였다. 그러나 추하고 변태적인 것, 이른바 엽기 취향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시도가 특히 패션, 의류, 주류 등의 광고에서 눈에 띈다. 사랑, 행복뿐 아니라 두려움, 혐오, 반감 등의 네거티브한 감정이 미학적 즐김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 홍 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