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네트워크]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씨, 연예계 '사랑방 언니'

  • 입력 2002년 2월 14일 14시 25분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 원장(38)이 소프라노 조수미씨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이었다. 이미 방송가에 화장 잘한다고 소문난 이 원장을 조씨가 먼저 찾았다. 공연 후 조씨는 이 원장을 불러 와락 껴안았다.

“‘노래 잘한다’는 찬사는 수없이 들었지만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에요. 고마워요.” 그 후 조씨는 이 원장의 손길을 자주 찾았다.

●연예계 인맥 발전소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이 원장의 미용실 ‘이경민 헤어& 메이크업’은 방송국 분장실과 다름없다. 불과 몇 분 사이로 가수 탤런트 모델 등 일류 스타들이 살갑게 인사하며 얼굴을 내민다.

서로 얼굴 마주칠 겨를 없이 바쁜 스타들에게 이곳은 선후배 사이의 인맥을 새로 쌓아 나가는 ‘인맥 발전소’ 이기도 하다. 각자의 데뷔시절부터 이 원장의 미용실을 찾게 된 인연으로 친목회까지 구성한 탤런트 유호정 신애라 오연수 이혜영 최지우도 이곳에서 만나 자매같은 사이가 됐다. 지난해에는 이 원장과 함께 서울중앙병원 소아암센터를 돕기 위한 자선행사까지 열면서 ‘단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용실을 찾는 스타들은 너나없이 이 원장을 허물없이 대한다. 3년 전 이 원장이 뷰티 비디오를 제작했을 때나 2년 전 메이크업 책을 냈을 때, ‘시간이 곧 돈’이라는 연예인들이 무료 모델을 자청했다. 함께 일해온 CF감독, 사진작가도 “이 원장의 실력이 100점 만점이라면 인간미는 110점”이라고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웠다.

왼족부터 조수미씨, 유호정씨, 오연수씨, 최지우씨, 이혜영씨

●“인간미는 +α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장은 “실력이 없으면 인연은 약해진다”고 스스로를 늘 다잡아왔다. 이 원장이 당시로는 생소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함을 걸고 사회에 뛰어든 것은 성신여대 서양화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85년. 때를 잘 만났다. 88올림픽을 전후로 광고 물량이 쏟아져 나왔다.

‘햇병아리’ 시절에 만난 인물이 사진작가 구본창 교수(계원조형예술대 사진예술과)다. 88년 에스콰이어 광고사진을 계기로 만나 조용하기로 유명한 구씨의 촬영장을 ‘오버액션’과 박장대소가 가득한 활기찬 분위기로 바꿔 놓은 덕에 친해졌다. 구씨는 “개인전을 열거나 중요한 이벤트를 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자리를 빛내주는 의리파”라고 이 원장을 평했다.

이혜영의 노래 ‘라 돌체 비타’가 담긴 앨범 재킷작업을 함께한 사진작가 김용호씨(도프 앤 컴퍼니 대표)도 이 원장이 실력만 있는 사람보다 몇 곱절의 일을 해낸다고 칭찬한다. “촬영하다보면 저나 배우나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가 많거든요. 그 때마다 분위기를 잘 바꿔줘요. 그것도 실력이죠.”

●수다와 입방아를 가린다

이 원장의 미용실에서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이 특종거리로 좋아할 만한 개인적인 이야기도 오간다. 하지만 비밀이 새 나가는 법은 없다.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이 원장이지만 ‘수다스럽다’는 것과 ‘입이 싸다’는 것을 철저히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영애가 등장한 ‘KTF 016 드라마’ 지면 광고 등을 만들어온 조세현 교수(중앙대 사진예술학과)는 “사진은 작가 스태프 모델이 서로를 신뢰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인간적인 작업이다. 지난 8년간 만나면서 남 욕하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어 신뢰가 간다”고 칭찬했다. 그래선지 이 원장이 속한 촬영팀은 대번에 ‘패밀리’가 돼 버린다는 것이 작가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왼족부터 구본창 교수, 조세현 교수, 한영아씨, CF감독 김규환씨, 김성주사장

●에너지 바이러스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패션쇼인 ‘서울 컬렉션’ 한영아 디렉터는 “패션브랜드 DKNY의 숍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이 원장이 메이크업 강좌를 했는데 모두가 탄성을 지를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남들보다 1.5배는 더 큰 목소리에 재치 있는 말솜씨와 유머감각 때문이었다.

그의 고객인 아나운서 정은아씨와 칼리(심은하), 바센(고소영) 등 수십건의 광고작업을 함께 해 온 CF 감독 김규환씨도 “이 원장은 일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넘치는 에너지에 모두 전염되고 만다”고 입을 모았다.

하루에 연예인 메이크업 십여건, 화보나 CF촬영 2, 3건이 겹치기는 예사라 건강한 몸으로도 버틸 재간이 없다. 그런데도 아는 얼굴이 찾아오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눈을 맞추면서 반가워 못 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처음엔 저도 과장인 줄 알고 경계했어요. 그런데 이젠 100% 진심이라고 느껴요.”(전도연)

●벗에게 배운다

87년 여성의류 비아트 광고 제작 때부터 만난 에스콰이어 이범 회장은 말 많고 샘 많은 연예계에서 이 원장이 10여년 만에 정상의 자리를 굳힐 수 있었던 이유를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트렌드를 열심히 익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막내 조카뻘 나이인 김민희조차도 그와의 세대차를 거의 못 느낄 정도다.

이 원장이 인간관계를 긍정적으로 풀어가는 에너지는 자신이 만나는 누구에게서나 흠보다는 배울 점을 찾는다는 것. 이 원장은 “알뜰살뜰한 신애라처럼 똑소리나게 살림하는 동생들을 보면 본받고 싶은 생각이 솟구친다”고 눈을 반짝였다.

97년 초 여성수입의류 ‘막스 앤드 스펜서’ 오프닝 파티를 열 때 화장을 해 준 인연으로 만나기 시작했고 이 원장을 두고 “재능도 있고 노력도 많이 해 앞으로 더 큰 성공이 기대된다”고 말하는 성주인터내셔널 김성주 사장도 이 원장이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메이크업 스쿨을 차리고 제 이름을 건 메이크업 제품도 출시하지만 아직 기본부터 배울 게 많은 풋내기 CEO일 뿐입니다.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늘 기꺼이 배우고 싶습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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