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곤충을 만났다… 인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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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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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섹토피디아/휴 래플스 지음·우진하 옮김/656쪽·2만8000원·21세기북스

사람들이 곤충머리 모양 가면 속에 들어가 곤충이 보는 세상을 체험하고 있다. 저자는 인류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지금은 인간과 음식 및 잠자리를 나누며 살아가는 곤충의 세계를 인간 세계와 연계해 살펴본다. 21세기북스 제공
사람들이 곤충머리 모양 가면 속에 들어가 곤충이 보는 세상을 체험하고 있다. 저자는 인류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지금은 인간과 음식 및 잠자리를 나누며 살아가는 곤충의 세계를 인간 세계와 연계해 살펴본다. 21세기북스 제공
곤충의 생물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아니니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것이 좋다. 곤충의 행태가 나오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재료일 뿐이다. 저자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인류학자인 만큼 곤충을 매개로 인간을 돌아보는 것이 책의 의도다.

영어 알파벳 ‘A’부터 ‘Z’로 시작하는 26개의 장으로 책은 전개된다. 어떤 장은 곤충 연구자들의 이야기이고 어떤 장은 곤충 탐험 여행기이며 어떤 장은 인간 세상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이야기다. 과학과 역사, 철학, 대중문화 등을 아우르면서 성(性), 진화, 유대인, 언어, 방사능 오염, 지구온난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주제의 스펙트럼이 넓다보니 다 읽고 나면 마치 뷔페를 먹은 후처럼 큰 인상이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적지 않은 숙고와 사색을 하게 된다.

‘진화(Evolution)’에서는 위대한 곤충학자 파브르의 일대기를 다룬다. 파브르는 땅벌을 사랑했다. 개미나 나비에 관해서는 거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땅벌은 다른 어떤 곤충보다도 그의 책에 자주 등장한다. 놀랍도록 정교한 땅벌의 행동에서 파브르는 본능의 힘을 느꼈고, 이를 바탕으로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을 지지했다. 땅벌은 새끼들을 위해 애벌레를 잡을 때 죽이지 않고 정교하게 마취를 한다. 새끼들이 부화해서 그 애벌레를 먹이로 삼을 때까지 부패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살려두었다가는 새끼들이 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마취를 선택한 것이다. 이 놀라운 행동은 학습이 아닌 본능에 의한 것이다. 본능에 의한 이같이 정교한 행동에 진화라는 중간 단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에 파브르는 회의적이었다.

‘성(Sex)’을 주제로 한 장에서는 벌레가 되어 여자에게 짓밟히는 상상을 함으로써 오르가슴을 느끼는 제프 빌렌차라는 남성의 얘기가 나온다. 그는 자신과 성적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위해 벌레를 짓뭉개는 장면이 난무하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고, TV 토크쇼에 나와 독특한 성적 취향을 공개하기도 했다. 저자는 빌렌차의 이야기로 시작해 동물 학대 영상물을 제작, 배포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미국 하원 결의안 이야기까지, 미국 사회에서 나왔던 인간과 동물, 인간과 곤충 사이의 관계 규정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펼쳐 보인다.

곤충들의 행태에서 인간이 보다 자유로워질 단초를 얻을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도 나온다. 한 아마추어 곤충학자가 브라질 남서부에서 나비가 딱정벌레의 궁둥이를 핥는 장면을 포착했다. 그러나 이들은 공생관계에 있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입과 항문을 맞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들이 즐거움을 위해 다른 종족과 성적 접촉을 한 것이 아니냐는 발칙한 상상을 한다. 그는 “곤충학자들이여, 당장 연구에 착수하라”고 외치며 “우리는 즐거움과 욕망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체르노빌(Chernobyl)’에서는 방사능 오염으로 기형이 된 곤충을 찾아다니며 그림으로 그리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욕망이 초래한 재앙을 말하고, ‘지구온난화의 소리(the sound of global Warming)’에서는 피년소나무 안에 사는 좀벌레가 지구온난화의 전조이자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펼친다.

곤충을 매개로 펼쳐지는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사유는 경탄스럽다. 그러나 저자도 말하듯 곤충이 인간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자연에는 도덕이 없다. 곤충으로부터 지나친 사유를 끌어내려 한 것은 아닌지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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