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Y염색체 속에 숨은 이브의 남편을 찾다…‘최초의 남자’

  • 입력 2007년 8월 11일 03시 02분


코멘트
◇ 최초의 남자/스펜서 웰스 지음·황수연 옮김/383쪽·1만8000원·사이언스북스

‘이브의 남편’을 찾아 나선 21세기형 인디애나 존스의 지적 모험담.

인류의 기원을 추적한 이 책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왜 아담이 아니고 ‘이브의 남편’일까. 지구 위 인간을 대상으로 한 고고인류학과 그 몸속에 감춰진 DNA를 현미경으로 추적하는 분자생물학에서는 모두 아담보다 이브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고고인류학이 1959년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에서 발굴한 ‘루시’라는 이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여성이다. 호모하빌리스와 호모에렉투스가 동시대에 생존했다는 연구 결과에서, 조사 대상 중 가장 오래된 호모에렉투스도 여성이다. 분자생물학에서도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의 기원을 연구할 때 여성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미토콘드리아DNA(mtDNA)를 추적했다.

DNA는 유전 과정에서 변이를 일으킨다. 세계 인류의 DNA를 추출해 유전적 변이가 어떤 부위에서 몇 차례 발생했는지(다형성)를 비교 분석하면 ‘유전자 족보’를 만들 수 있다.

DNA는 인간 세포 중 세포핵과 미토콘드리아 두 곳에 들어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생성하는 것으로 아주 오래전 인간의 세포에 기생하던 박테리아가 일종의 ‘영주권’을 획득한 경우다. 유전자 두 세트로 이뤄진 세포핵의 DNA는 엄마 아빠에게서 절반씩 물려받아 재조합되기 때문에 추적하기가 힘들다. 반면 mtDNA는 엄마의 난자를 통해서만 전달되고 한 세트로 전달돼 추적하기 쉽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 연구팀이 발표한 mtDNA 다형성 분석연구 결과는 20만∼15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 살던 여성이 현생 여성의 시조 이브라는 결과를 끌어냈다.

아담에 대한 추적은 훨씬 뒤에 이뤄진다. 세포핵 속 23쌍의 염색체 중에서 가장 작고 아빠의 정자를 통해서 한 세트로만 전달되는 Y염색체의 유전적 변이를 역추적한 것이다. 그 결과 2000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오늘날 지구상 모든 남성의 시조가 약 6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다는 성과를 냈다. 저자는 그 연구팀의 일원으로 2005년 이후 ‘유전자 지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집단유전학자다.

두 연구 결과는 상충한다. 이브와 아담이 최소 9만 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브와 아담은 실제의 이브와 아담이 아니다. 현생인류의 유전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조사 대상 유전자 사이에 더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 시점의 Y염색체 보유자를 아담, mtDNA 보유자를 이브로 불렀을 뿐이다.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현생인류가 20만 년이 안 되는 시점에서 아프리카에서 발원했으며 6만 년 전쯤 아프리카를 벗어나 다른 대륙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저자의 모험은 그 뒤에 펼쳐진다. 현생인류의 시조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부시먼, 아프리카 밖에서 그에 가장 가까운 호주의 애버리진, 애버리진의 뒤를 이어 중동을 거쳐 아시아와 유럽으로 분기한 유라시아인, 그리고 아시아인의 일부가 다시 아메리카로 이동한 경로를 추적해 세계 오지 곳곳을 누빈다.

연구의 핵심은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이 모두 하나의 조상에서 기원했으며 그 조상은 자바원인, 베이징원인, 네안데르탈인 등으로 불린 후기 구석기 시대 이전의 존재와 다른 종이란 점이다. 우리 인간의 유전자들은 20만 년 전부터 ‘위 아 더 월드’를 부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원제 ‘The Journey of Man’(2002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