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말한다]정명희 "울프는 글로써 영혼을 구하려고 했죠"

  • 입력 2001년 7월 20일 18시 41분


보는 것만으로도 육중한 느낌이 전해질 만큼 두꺼운 버지니아 울프의 전기 ‘버니지아 울프’(전2권·책세상)가 나왔다. 분량이 1500페이지가 넘는데다 수 많은 인용문이 가득한 이 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언뜻 보기엔 무모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명희 국민대 영문과 교수는 울프 전기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허마니오니 리(영국 옥스포드대 교수)의 역작을 우리말로 옮겨냈다. 수 년은 족히 걸렸을 법한 방대한 작업을 불과 2년만에 해냈다는 점도 놀랍다.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울프 전공자라지만 미국 뉴욕대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 알게 된 저자에 대한 신뢰와 울프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처음에는 빽빽한 문장과 방대한 양, 책을 이해하면서 번역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에 금방 지쳤습니다. 하지만 ‘당신 책이 너무도 길다’고 리 교수에게 푸념한 뒤 ‘미안하다’는 답장을 받고는 너무 부끄러워서 번역을 서두를 수 있었습니다.”

정 교수는 ‘존재의 순간들, 광기를 넘어서’란 부제가 붙은 이 전기의 특징으로 ‘소설가의 정전’인 울프를 왜곡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지금까지 많은 평전들이 울프를 평가자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재단했습니다. 누구는 울프에게서 모더니즘만을 보고 가고, 누구는 울프에게서 페미니즘만을 보고 간 것이죠.”

전자는 ‘델러웨이 부인’ 등을 뒤적이며 전통소설의 본령인 플롯과 인물을 부인한 전위성을 중시했고, 후자는 ‘자기만의 방’을 팜플렛처럼 읽으면서 유년기 성적 학대에서 비롯된 광기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리 교수의 전기가 갖는 제일의 미덕은 ‘소설가’인 울프를 온전하게 되살려낸 점입니다. 실제로 생전에 울프가 가장 좋아했던 칭호도 ‘프로페셔널 라이터’라는 말이었습니다. 병마에 늘 시달리면서도 글을 통해 영혼을 구하려고 발버둥쳤던 치열한 작가였습니다. ”

정 교수는 저자가 발품을 팔아 수집한 많은 자료를 편의적으로 미화하지 않았다는 점도 높게 평가했다. 광기가 유전된다는 생각에 아이를 갖지 않았던 울프가 남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친언니에게 느꼈던 열등감이나 자신의 성적 불감증에 대한 자격지심까지도 있는 그대로 밝힌 것이 그런 예다.

이 책을 울프라는 20세기 문학의 준령을 조망하는 충실한 지도로 삼을 수 있지만 막상 초심자가 울프 소설에 접근하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 이들을 위해서 정 교수는 국내 번역작품 중에서 ‘버지니아 울프 선집’(전4권·솔출판사)을, 이중에서도 특히 자신이 번역한 ‘델러웨이 부인’을 먼저 읽길 권했다.

“인스턴트 식품 같은 요즘 소설과 달리 울프의 작품은 두고두고 음미할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달픈 삶에서 자신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주고, 물질적 풍요를 비집고 들어오는 정신적 빈곤을 위로해주는 종교적인 가치까지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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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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