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인류 최초의 키스'

  • 입력 2002년 12월 29일 17시 35분


연극 '인류최초의 키스'의 한 장면

연극 '인류최초의 키스'의 한 장면

청송감호소라는 ‘특별한’ 장소에 여덟 사람이 등장한다. 어두운 마룻바닥과 필요한 공간만 찾아다니는 작은 조명은 이 공간의 폐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적절하다.

20년을 감방에서 보낸 동팔, 강간범 학수, 조직폭력배인 살인범 상백, 전문사기범 성만.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은 ‘감시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시키는 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자임하는 교도관 한 명. 그는 ‘감시하는’ 사람이다.

검사, 변호사, 심리학자로 구성된 세 명의 보호감호 심사위원회. 이들은 자유를 누릴 자와 누려서는 안 될 자를 ‘판단하는’ 사람이다.

역할 구분이 분명한 이들이 끊임없이 서로 부딪히며 관객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것은 이런 인위적 역할 구분은 ‘절대로’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타고난 흉악범으로 규정된 학수는 보호감호가 연장되자 정신이상이라는 탈출구를 택하고, 신앙의 힘에 의지했던 성만은 석방이 기각되자 난동 끝에 죽임을 당한다. 오랜 인연을 가진 상백과 교도관은 서로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동팔은 도리어 위험하고 잔인한 세상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저항한다.

‘판단하는’ 역할을 맡은 세 사람은 권리를 무책임하게 남용하며 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이 타인의 육체에 상해를 입히는 것보다 훨씬 잔인한 죄악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죄악을 저질렀고 그 대가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었다.

약자의 편을 드는 전형적인 캐릭터 설정 속에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열쇠는 연출자 김광보의 탄탄한 구성과 함께 연기자들의 실감나는 연기력이다.

웃음과 비애를 동시에 느끼게 해 주는 독특한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오달수(학수 역), 초라하고 볼품 없는 배역에서도 굵은 선을 보여주는 주진모(동팔 역), 소박한 인간성에의 몰입으로 갇힌 자와 가둔 자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 주는 김상호(상백 역), 순수와 비열의 이중성을 계산된 신경질적 연기로 풀어내는 성노진(상만 역).

‘인류 최초의 키스’란 나 아닌 타자와의 가장 내밀한 접촉을 의미한다. 이 ‘키스’를 통해 벌거벗은 타자와 하나가 되며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 관객은 극장문을 나서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지금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1월4일∼2월2일 바탕골소극장에서 연장공연. 평일 7시반, 금토 4시반 7시반, 일 3시 6시(월 쉼). 1만∼1만5000원. 02-765-7890김형찬기자 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