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상의 폭력’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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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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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문제들/안보윤 지음/248쪽·1만 원·문학동네

제목은 반어법이다. 실상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학교폭력과 성추행, 도박중독, 방화, 살인 기도 등이 책장 가득 널려있다. 비정하고 냉혹하다. 2005년 ‘악어떼가 나왔다’로 등단한 작가는 ‘오즈의 닥터’(2009년)에 이어 일상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처절하게 그린다.

두 사람이 있다.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슈렉’으로 불리며 왕따당하는 초등학교 5학년생 ‘아영’. 또래 남학생들에게 맞는 것을 넘어 성적 착취까지 당하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다. 서른아홉 살의 헌책방 주인인 ‘두식’은 게이다. 남자 후배를 사랑하지만 그 후배는 자신이 도박중독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밑천이 거덜 났을 때만 두식을 찾아와 돈을 요구한다.

이들이 만난다. 어느 날 또래들의 폭력을 피해 가출한 아영은 헌책방으로 숨어들고, 두식은 갈 곳이 없는 아영과 함께 생활을 시작한다. 주위로부터 철저히 고립되고 소외된 이들은 서로가 사회적 약자로서 ‘동류(同類)’임을 깨달으며 가까워진다.

당사자가 아니면 폭력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작품은 눈을 질끈 감게 만들 정도로 디테일하고 적나라한 묘사를 통해 독자를 폭력 현장의 가운데에 세워놓는다. 놀이터에서 벌어지는 초등생들의 성폭행, 모텔에서 벌어지는 동성애자들의 폭행 등. 신문 사회면 한구석에 건조한 문체로 ‘죽어있던’ 일상의 폭력이 문인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눈앞에 생생히 살아나고, 이는 섬뜩한 각성으로 이어진다. “상황이 이런데, 그래도 무시할거야?”라고 책은 묻는 듯하다.

아영과 두식을 절망의 끝으로 내몬 육체적 정신적 폭력은 끝난다. 하지만 깊은 상처가 남았고, 상황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그들의 자각은 매우 현실적이기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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