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걸작은 화가의 창조물?… 글쎄요

  • Array
  • 입력 2011년 10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 걸작의 뒷모습/세라 손턴 지음·이대형 배수희 옮김/400쪽·2만 원·세미콜론

박제된 말을 소재로 한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설치미술 ‘무제’. 신예 작가지만 그의 작품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 등에서 비싼 가격에 팔린다. 세미콜론 제공
박제된 말을 소재로 한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설치미술 ‘무제’. 신예 작가지만 그의 작품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 등에서 비싼 가격에 팔린다. 세미콜론 제공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이 2010년 5월 크리스티 미술품 경매에서 1억640만 달러(약 1245억 원)에 낙찰돼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때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이 비자금으로 구입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미술품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엄청난 가격에 작품이 거래될 때나 위작이나 탈세, 학력위조 등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을 때. 이처럼 미술과 미술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화려함, 그리고 불투명함’이다.

‘이코노미스트’지 현대미술 기고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4년간의 심층취재와 작가, 딜러, 컬렉터, 경매회사 직원, 큐레이터, 비평가, 미술학도를 비롯한 전 세계 미술 관계자 250여 명의 인터뷰를 통해 비밀스럽고 때로는 배타적인 미술계의 은밀한 속살을 파고든다.

이를 위해 책은 미술계의 7가지 현장을 탐색한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작가 스튜디오(일본 도쿄 무라카미 다카시 스튜디오)와 작품이 소비되는 아트페어(스위스 바젤 아트페어) 경매(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가 있고, 미술사에 이름을 올리려는 작가의 욕망이 꿈틀대는 미술상 시상식(영국 런던 테이트 미술관 터너 상)과 미술계를 보는 시선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술잡지 편집실(뉴욕 아트포럼 매거진), 전 세계 미술계 인사들의 사교의 장인 비엔날레(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그리고 미대 학생들이 펼치는 풋풋하고 기발한 수업(미국 로스앤젤레스 칼아츠 비평수업)이 생생히 펼쳐진다.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농담이나 뒷얘기를 엿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 이브닝 세일에는 프라다 브랜드 옷을 입으면 안 된다. 왜? 크리스티 직원과 같은 옷을 입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작가 무라카미가 세계적인 컬렉터 프랑스아 피노의 주문을 제시간에 못 맞춘다는 것의 의미는?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주문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과 같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거래되는 아트페어를 참관하는 건 마치 10대 자녀가 섹스 중인 부모의 침실에 불쑥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등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미술은 각계 ‘선수’들이 긴밀하게 작용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유기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위대한 작품은 탄생하는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단순히 작가와 그의 조수가 만드는 게 아니라 딜러, 큐레이터, 비평가, 컬렉터 등에 의해 위대한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주제를 다뤘지만 책의 구성은 불친절하다. 이야기는 드라마처럼 펼쳐지는데, 현장감을 더해주는 사진이나 이미지 등은 턱없이 부족하다. 한 예로 무라카미의 스튜디오에서 미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작가나 스튜디오 내부 모습 등을 담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무라카미의 얼굴쯤은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걸까. 미술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현대미술의 은밀한 삶’이라는 부제에 혹해 이 책을 읽는다면, 수없이 쏟아지는 낯선 이름에 혼란스러움만 느낄 수도 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