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닷컴 추천 새책]무라카미 류 著 '공생충'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0시 24분


▼'공생충' 무라카미 류 지음/양억관 옮김/웅진닷컴 펴냄/290쪽 6800원▼

국내에도 일정한 팬을 확보하고 있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원조교제(러브 앤 팝)' '사도 마조히즘(토파즈)' '유아학대(라인)'등 일본사회의 병폐를 다룬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가 줄곧 마약 섹스 폭력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이유는 일본의 선정적인 풍속을 소개해 이방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 이런 소재들은 현대인에게 보다 정확하게 현실을 인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신작 '공생충'은 상반된 두 요소-무한대로 소통이 가능한(혹은 가능하다고 믿는) 인터넷과 외부접촉을 차단한 채 살아가는 히키코모리(오타쿠보다 좀더 자폐적인 상태의 젊은이들을 가리킴)-가 결합했을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인터넷을 통해 파괴와 살인, 살육과 자살을 불러일으키는 멸종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된 우에하라는 어느날밤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야구배트로 내리친 후 집을 뛰쳐 나온다. 하지만 이메일로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인터바이오의 정체를 알게 된 우에하라는 그 집단을 숲속으로 유인해 독가스를 뿌린다.

그러나 이 소설에 묘사되는 히키코모리의 문제점이나 인터넷의 폭력성만 기억한다면 작품을 반쯤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무라카미 류는 작품후기에서 "혼자 틀어박혀 사는 사람은 이 사회의 거짓희망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낡아빠진 희망이나 틀에 박힌 희망에 의지하여 사는 '멀쩡한' 사람들보다 차라리 '히키코모리'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지금 그는 문명이 저질러놓은 새로운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김현미<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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