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산책하듯 읽는 유럽정원 이야기… 대담형식으로 꾸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유럽, 정원을 거닐다/정기호 최종희 김도훈 이준규 윤호병 지음/292쪽·1만6000원/글항아리

정기호 성균관대 조경학과 교수가 같은 분야 학자 네 명과 차례로 마주 앉아 나눈 대담을 옮겼다. 정 교수는 머리말에서 “대화로 이뤄졌기에 짜임새에 ‘빈틈’이 있을지 모르지만 편안하게 이야기를 듣듯 책장을 넘겨 가길 바란다”고 썼다.

그 ‘빈틈’ 사이로 조경에 관심 많은 독자가 엿듣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를 넉넉히 흘려 보낸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증명하는 것은 ‘문체를 친밀하게 한다고 해서 내용이 꼭 친밀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제목을 보고 유럽의 정원에 대한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기대한 독자는 본문 첫 페이지부터 어리둥절해진다. 앞장선 오브제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뒤이어 언급되는 소재는 피렌체 보볼리 가든,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 공원, 영국 스타우어헤드 가든 등이다. 유럽의 광장과 왕궁 또는 귀족 저택의 뜰을 뭉뚱그려 ‘정원’이라는 단어 아래로 욱여넣을 수 있을까. ‘건물 밖 공간을 거닐다’ 정도로 했다면 오해가 없었을 것이다.

내용에도 빈틈이 보인다. “뒤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던 빌라 감베라이아와 폼페이는 아무리 뒤적여도 다시 언급되지 않는다. 조경 전문가가 “이탈리아의 색채가 가장 짙게 나타난 정원”이라고 추천한 장소라면 독자는 자연히 그 역사와 여행 정보가 궁금해진다. 이 정원에 특히 “이탈리아적 모습이 물씬 배어나는” 까닭이 무엇인지, 조경 의뢰인 자노비 라피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전문가들끼리 쓸 법한 용어와 약어를 여과하거나 풀이하려 한 노력의 흔적 없이 그대로 옮긴 것도 책장 넘기기를 방해한다. ‘제니어스 로시(Genius Loci)’라는 말이 ‘장소성’을 뜻하는 것이라 의역했다면 ‘장소성’이 무엇인지 짤막한 설명이라도 붙여야 했다. 어둠 속에 앉아 심심한 슬라이드 화면을 보며 무성의한 설명을 들어야 했던 중학교 때 과학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서점에서 사진만 죽 훑어보고 드문드문 삽입된 답사 추천지 정보만 메모하면 충분할 것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유럽#정원을 거닐다#조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