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떡하죠?]버릇나쁜 아이 엄하게 꾸짖어야

  • 입력 1999년 10월 3일 19시 08분


얼마 전 지하철에서의 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손잡이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의자에 올라가서 뛰어노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보고 한 할아버지가 “네 이 녀석, 사람들이 앉는 의자에 신을 신고 올라가면 되느냐”며 호통을 치셨다. 바로 그 때 “남의 자식한테 무슨 간섭이야”라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그 아이의 부모였다.

비행청소년을 접하다 보면 그 부모에게 더 문제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친 아이를 붙잡아 반성문을 쓰게 한 후 부모를 부르면 잘못을 빌기는커녕 “얼마냐”고 묻고 지갑을 꺼내면서 “당신이 반성문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며 따지는 부모가 많다고 한다. 이런 부모에게서 어떻게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겠는가.

‘자식의 기’가 죽을까봐 꾸중을 못하겠다는 부모를 주위에서 종종 만나곤 한다. 그런 부모들은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려면 ‘기’가 세야 할 것 아니냐고 강변한다.하지만 자식의문제행동까지도 ‘기’때문에 꾸중하지 않는 것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자식의 기만 살리면 된다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남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문제아로 자라 부모의 골칫거리가 되기 쉽다.

예전에는 집안이 가난하고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통계를 보면 집안이 윤택하고 부모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오히려 비행을 더 저지르고 있다. 부모의 잘못된 가정교육이 소년비행을 부추기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옛말에도 ‘오냐 오냐하고 키운 자식’은 버릇없는 아이들의 대명사였다. 자식이 귀여울수록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과 교육시키는 것은 다르다.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눈높이를 그들에게 맞춰야 하지만 가르치고 교육할 때는 눈높이를 낮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권위없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듯이 권위없는 부모의 가정교육 또한 통하지 않는다. 가정교육에서는 ‘부모는 부모, 자식은 자식’이라는 역할 확인이 필요하다. 가정은 가족공동체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사회공동체의 최소단위이기도 하다. 가정교육도 가족간의 규범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사회공동체의 기본규범까지 가르쳐야 한다.

가정교육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 부모로서 올바른 권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하고 싶다.

박병식(용인대 교수·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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