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건강]산부인과 신생아실

  • 입력 2001년 2월 20일 19시 23분


‘한 개비씩 피워 문 담배가 벌써 두 갑째. 곧 출산한다고 한 지가 두 시간이 지났는데… 혹시 뭐가 잘못된 게 아닐까.’

19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서울 중구 삼성제일병원 산부인과 대기실. 분만실 앞을 서성거리는 회사원 박모씨(32)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정일을 보름 앞둔 이날 오전 갑자기 진통을 호소하는 아내를 데리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내달렸다.

“성격 급한 건 당신을 빼닮았나봐….”

분만실로 들어가기 전 애써 웃음짓던 아내의 얼굴을 떠올려보지만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찾아들었다. 새 담배를 꺼내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아들입니다, 산모도 건강하시고요.”

‘낭보’의 기쁨보다 맥이 탁 풀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을 꼭 잡았다. ‘여보 고마워, 아가야 고생했다….’

모든 부모에게 갓 태어난 아기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10개월간의 초조한 ‘기다림’끝에 새 생명이 태어나 부모와 자식이 ‘초연(初緣)’을 맺는 곳. 그래서 산부인과는 항상 새로운 기다림과 희망으로 설렌다.

◇보호자 대기실-신세대 남편 꽃다발-키스 세례

하루 20∼30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는 이 병원 분만실 옆 대기실은 ‘아내’나 ‘딸’이 순산하기를 기원하는 긴장된 표정의 보호자들로 항상 만원이다. 일부는 기다림에 지쳐 의자에 기댄 채 졸고 있다. 그러나 2시간마다 산모의 상태를 브리핑할 때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공세’를 펼친다.

“자궁이 5㎝이상 열렸고요, 진통도 막바지인데….”

30대 초반의 한 남편은 휴대전화로 친인척에게 ‘출산중계’하느라 여념이 없다. 딸 아들 가리지 않은 지가 오래지만 아들이 태어나면 박수 치며 환호하는 보호자들이 여전히 많다. 병원관계자는 “출산을 마치고 나온 아내와 ‘상봉’할 때 꽃다발이나 키스세례를 퍼붓는 신세대 남편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귀띔했다.

◇분만실-신생아 첫 대면 "너무 못생겼다?"

18개의 침대에서 산모들은 저마다 마지막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일부는 막바지 진통을 견디느라 아예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문 표정. 대다수의 산모들은 출산 순간에 남편이 곁에 있길 바라지만 상당수의 ‘심약한’ 남편들은 슬그머니 사라져 간호사들의 애를 먹이기도 한다. 이 와중에도 일부 산모는 “내가 딸이라고 안 낳겠느냐”며 막판까지 성별확인을 요구해 의료진을 곤혹스럽게 한다.

갓 태어난 신생아와의 첫 대면에서 대부분 산모들의 실망 어린 첫마디.

“너무 못생겼다….”

그러나 한명선 간호사는 “아기가 좁은 산도(産道)를 통과하느라 얼굴이 부은 탓이라고 설명을 해주면 상당수의 산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기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는다”고 말했다.

◇신생아실-"내가 네 아빠야!" 아기와 첫 대화

갓 태어난 ‘왕자’와 ‘공주’의 ‘임시숙소’인 신생아실. 30여명의 간호사들이 100여명의 신생아들을 쉴새없이 돌보는 가운데 창문 밖에서는 보호자들이 ‘까치발’을 한 채 목을 길게 빼고 안을 두리번거린다. 수많은 아기들을 찬찬히 둘러보던 시선이 이윽고 한곳에 멈추고…. “우리 아가 저기 있다. 내가 아빠야!” 가느다란 발목에 채워진 표찰로 아기를 확인한 보호자들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이도 저렇게 예쁠까?” 곧 출산을 앞둔 예비부모들의 ‘견학’도 줄을 잇는다.

19일 오후 이모씨(29) 부부가 하얀 포대기에 싼 딸을 품에 안고 병원문을 나섰다.

지난해 회사의 부도로 실직한 뒤 차량정비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중인 이씨는 첫딸의 볼에 입을 맞추며 나직이 속삭였다.

“요즘 아빠가 너무 힘들었는데, 네가 와 줘서 너무 큰 힘이 된단다. 이제 널 보며 살 거야, 사랑해….”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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