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부른다/제주]탤런트 고두심이 말하는 내고향

  • 입력 1998년 7월 24일 19시 40분


천제연폭포
천제연폭포
자나깨나 서울로 ‘도망’칠 생각만 했다. 학교가 파하면 팔 걷어부치고 곧장 매달려야 했던 농삿일. 주말이면 집에서 한시간이나 떨어져있는 밭까지 걸어가 푸성귀라도 짊어지고 와야 했다. 야채를 내다 팔아 학용품을 사줬던 어머니가 그때는 왜 그렇게 부끄러웠던지.

서울이 달나라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던 1969년 제주도.

하지만 서울은 탤런트 고두심에게 ‘고향의 가난과 지긋지긋함’에서 건져줄 약속의 땅이었다.

서울서 공부하는 오빠의 밥을 해주겠다는 구실을 내세워 기어코 서울∼목포간을 운행하는 가야호 3등선 객실에 몸을 실었던 열아홉살 그 밤, 두렵고 떨리고 무서웠다.

마을에서도 ‘인물’로 통하던 어머니 얼굴을 제일 빼닮은 딸로 51년 제주 남문동(지금의 중앙로)에서 태어난 고두심. 그러나 아무도 형제많은 집안(3남4녀)의 다섯째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지만 중학교때부터 배운 장구를 두드릴때면 마음속 모든 응어리가 확 풀리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던 ‘끼’많던 소녀. 그녀의 가슴속에는 어릴때부터 ‘배우가 되겠다’는 당찬 생각이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꼭 해보이고 말거야, 꼭….

서울에 도착해 무역회사 여직원을 하다 곧 MBC공채에 뽑혀 꿈에 그리던 탤런트가 되긴 했지만 녹화장 주변만 서성거리다 가정부 심부름꾼 다방종업원 등 티 안나는 배역을 전전했다. 모처럼 큰 역을 맡았을때는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녹화장에서 울어버리기 일쑤. 연기자를 포기해야겠구나…. 갈등과 번민으로 7년을 보냈다. 그러다 절망의 늪에 빠진 그녀를 구원한 것은 다름아닌 ‘고향’이었다.

제주기생 김만덕 할머니의 일생을 그린 ‘정화’(76년)의 여주인공. 하늘도 구할 수 없다는 큰가뭄에 가진 것을 몽땅 풀어 굶주리는 사람을 구했다는 제주의 대표적 여인상. 그녀는 김할머니를 연기하며 그토록 도리질쳤던 “내 속에 흐르는 제주의 피”를 낱낱이 받아들였다.

한번 자맥질에 얼마나 호흡을 끊고 견디느냐가 생활로 직결되는 강인하고 참을성 많은 제주 여인들, 그러면서도 바다같은 포용력을 지녔던 나의 할머니 어머니…. 드라마는 대성공했고 ‘모처럼 제대로 된 연기자 하나를 건졌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후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86년), 마당 깊은집(90년), 춤추는 가얏고(90), 19년째 이어오는 전원일기 맏며느리역으로 한국적 여인상을 연기하는 대표적 연기자로 자리잡으면서 대종상여우조연상(83년) KBS(89년) MBC(90년)연기대상, 한국방송대상여자연기상(91년), 한국백상예술대상(93년)을 잇따라 수상했다.

“젊어서는 벗어나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이제는 고향 생각만하면 가슴 저 밑바닥부터 저려와요. 고향은 숱한 좌절과 방황에 흔들릴때마다 언제나 묵묵히 두팔 벌려 안아주던 내 어머니같은 곳이지요”

쉰을 바라보는 중년의 그녀(47)에게 제주의 모든 것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제주의 겉이 아니라 속을 봐야죠. 아무렇게나 이골목 저골목 들어가 거닐어 보세요. 돌담 한조각, 초가지붕이 예사로 보이지 않아요”

그중에서도 ‘오름트레킹’은 그녀가 첫손 꼽는 명물. 기생화산을 일컫는 제주방언인 ‘오름’은 한라산을 가운데 두고 무려 3백68개나 흩어져 있다.

신선한 공기, 새들의 지저귐, 풀냄새,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말….

오름에 올라 풀밭을 한가로이 거닐면 쓸쓸하면서도 포근하게 감싸는 따뜻함이 전해져 온다.

“제주도 바다처럼 살고 싶어요. 가슴속 깊은 곳에 휘몰아치는 격랑을 품고서도 표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잔잔하게 모든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바다…”

그녀의 몸은 이미 고향마을 어느 바닷가를 거니는 듯 두눈은 남쪽 먼 하늘에 닿아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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