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이혼결심

  • 입력 1998년 2월 18일 21시 10분


▼ 후배생각 ▼ 최용석<36·변호사·전서울지검 검사> 지금까진 ‘잘못된 만남’일지라도 주위의 눈총이 두려워 이혼하지 못하는 불행한 부부(특히 여성)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어요. 도저히 인연이 안된다 생각되면 미련없이 갈라서는 것도 자신이나 자녀를 위해서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맞고 살면서도 “자식들 때문에…”라며 주저하는 아내가 있다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심어주게 되지요. 얼마전 술만 먹으면 아내를 무지막지하게 폭행하는 아버지를 미워한 10대 남매가 자고 있는 아버지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내연의 여자를 한밤중에 데려와 자고 있는 아내에게 “건넌방으로 가 자라”며 폭행을 일삼는 남편에게 ‘이혼녀’라는 딱지가 무서워 한마디도 못하는 아내도 있고요. 모두 불행한 결혼입니다. 물론 이혼은 바람직한 게 아닙니다. 막을 수 있을 때까진 막아야지요. 그러나 부부사이엔 ‘넘어선 안되는 선’이 분명히 있습니다. 매일 시퍼런 눈두덩이 때문에 아내는 시장가기 겁나고 아이들은 “죽여라 죽여! 갈라서!”라고 소리치며 원수처럼 싸우는 부모가 두려워 밤늦도록 방황하고…. 어차피 한번인 인생, 때론 돌이키는 게 현명할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선배생각 ▼ 김재호<38·변호사·전서울가정법원판사> 결혼은 신성한 약속입니다. 나 하나의 인생만 생각해 별 고심없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 걸 단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끝끝내 지속하기 어려운 결혼이라면 이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막으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되죠. 배우자의 폭행 불륜 같은 몇가지를 제외하면 정말 사소한 일로 이혼에 이르는 가정이 의외로 많습니다. 92년엔 이혼 후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죽인 아들이 형장에서 “다시 태어나더라도 같은 행동을 하겠다”는 끔찍한 유언을 남긴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혼소송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 버리는 어머니도 있고요. ‘면접교섭권’이라 해서 이혼 후에도 자식을 정기적으로 볼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긴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가 드물죠. 아이를 독점하고자 하는 잘못된 생각이 아이의 성격을 파탄으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쉽게 이혼한 가정의 자녀 역시 쉽게 이혼합니다. ‘이혼도 별거 아니군’이라는 생각에 소중한 결혼을 저버리는 겁니다. 혹시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가정이 있다면 이혼한 부모나 주변 사람들을 한번 떠올려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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