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에세이/심윤경]뒤늦은 꽃단장

동아일보 입력 2012-09-19 03:00수정 2014-08-2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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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소설가
“사진보다 훨씬 예쁘신데요!”

처음 인사 나누는 자리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민망하지만 나는 옛날보다 예뻐졌다.

지가 뭐 그리 예쁘다고 저러나 심기가 불편한 독자가 계시다면 나의 비교대상이 그저 과거의 나에 불과함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데뷔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최근작인 ‘사랑이 달리다’에 이르기까지 프로필 사진의 변천사를 비교해보면 내가 예뻐졌다고 유난을 떠는 이유가 쉽게 이해되실 것이다.

2012년은 나에게 의미 있는 해다. 1972년생인 내가 만으로 마흔을 넘기는 해이기도 하고, 2002년에 등단한 이래 작가로서 십 년을 살아온 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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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가 ‘사십 대 중년 여성의 성찰’이라고 전국 국어선생님들이 가르치셨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요즘 거울 앞에 달라붙어서 꽃단장에 열심이다. 입술이 도톰해 보이는 립스틱 색깔과 조금이라도 종아리가 날씬해 보이는 치마 길이를 찾는 데에 열중해 있다. 내 친구들이 십 대와 이십 대를 바쳤던 바로 그 일에 나는 나의 사십 대를 바치고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을 여태 나만 몰랐던가 땅을 치면서.

짧은 커트머리에 민얼굴, 티셔츠 일자바지에 운동화. 이게 삼십 대까지의 나였다. 계절에 따라 옷감의 두께만 달라졌을 뿐 기본형은 늘 변함이 없었다. 패션과 뷰티에 그토록 무지했던 나를, 나는 ‘내가 실용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했다. 나에게 몸차림이나 옷맵시 같은 것은 겉치레와 비슷한 의미의 비실용적인 일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맙소사, 나는 실용을 숭상한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얼마나 큰 비실용을 자행했던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야 알아차린 ‘나’라는 인간은 놀랍게도 곡선이 어울리는 인간이었다. 나는 각진 사각턱, 높은 콧대, 때로는 매우 도전적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고, 그런 직선적인 얼굴과는 달리 몸통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첩첩이 둥글둥글한 슬픈 부조화의 육체를 타고났다. 직선을 강조하여 시원시원하고 단정한 분위기를 만들든지 곡선을 강조하여 온화하고 풍성한 분위기를 만들든지 둘 중 하나의 통일된 방향성을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내 몸 상태를 개선해 늘씬한 직선형으로 만드는 건 하늘의 뜻이 아닌지라 내가 살 길은, 곡선에 있었다. 풍성한 웨이브 헤어와 부드러운 화장으로 직선적인 얼굴에 곡선을 보태고, 타고난 몸의 곡선을 살리는 여성적인 의상을 입는 것이 나에게 어울렸다. 그걸 깨닫기까지 무려 사십 년이 걸렸다.

달라진 내 옷차림과 머리모양이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외모를 꾸미고 가꾸는 행위에서 나는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뜻하지 않은 ‘치유’를 경험했다. 이전까지 비실용적인 겉치레로 매도했던 많은 것에서 나는 실로 ‘행복’이라고 이름 붙여도 지나치지 않은 어마어마한 충족감을 맛보았다. 이제 나는 그것이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의 작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몸과 마음속에는 수많은 요소가 뒤섞여 있다. 그중 어떤 것들을 나는 극도로 아끼고 사랑한 반면 어떤 것들은 싫어하여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편애가 지난 세월 나 자신을 꽤나 병들게 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어떤 것도 태생적으로 무가치하거나 열등한 것은 없다. 가꾸고 다듬기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색깔과 형태의 꽃들이 피어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뒤늦게 꽃단장에 열심이다. 젊어 예쁜 시절은 지나갔지만 화장발 잘 선 어느 날 꽃중년 소리라도 한번 들어볼지 누가 알겠는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도, 비너스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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