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 맞아 실신해도, 뼈에 금이 가도 뛰어… 부상은 나를 키운 약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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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15>프로야구 NC 김경문 감독

“저도 NC를 꼽겠습니다.” 프로야구 9개 구단 감독에게서 이구동성의 대답이 나왔다. 지난달 29일 시즌 개막에 앞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다크호스를 예상해 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NC는 데뷔 시즌이던 지난해 7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1년을 경험하면서 ‘아기 공룡’(NC의 팀명은 다이노스)이던 우리 선수들의 발톱이 자라고 성장했다는 뜻 아니겠는가.”

NC를 이끌고 있는 김경문 감독(56)을 2일 광주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다. 인터뷰 전날 밤 NC는 광주에서 열린 KIA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0-1로 패했다. 그는 “어제처럼 아쉽게 패한 날은 잠이 잘 안 온다. 경기를 복기해야 잊을 수 있다. 오전 2시 넘어 겨우 눈을 붙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사령탑, 두산 감독 시절 한국시리즈 준우승 3회….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이지만 불면의 밤과 함께 새 시즌은 시작됐나 보다.

○ 재능보다는 땀

NC가 김 감독을 창단 사령탑으로 선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명성보다는 잠재된 능력이나 장점을 중시해 선수를 뽑아내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처음에는 앞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꾸준하게 노력하고 성실해야 결국 이긴다.” 두산 감독 시절 김현수, 손시헌, 이종욱, 고영민, 정수빈 등을 발탁했던 그는 NC에서도 이재학, 김종호, 모창민, 박민우 등을 키워냈다.

흙 속의 진주를 캐내는 비결을 묻자 김 감독은 “내 머릿속에는 카메라가 아주 많다”고 말하며 웃었다. 훈련할 때 선수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이를 카메라처럼 찍어 머릿속에 저장해 둔다는 뜻이다. “투수나 타자 폼이 이상해져도 바로 알아챌 수 있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컨디션을 잘 느낄 수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는 퓨처스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신생 KT 조범현 감독을 비롯해 프로 사령탑 10명 중 4명이 김 감독과 같은 포수 출신이다. 포수 감독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이유는 뭘까. “포수는 투수와 야수를 넘나들면서 볼 수 있다. 투수와의 호흡뿐 아니라 야수와의 이해력도 높다.” 김 감독은 NC와의 계약을 1년 남겨둔 올 1월 2016년까지로 기간을 연장했다. 창단 감독의 재계약은 사상 처음으로 알려졌다. “NC는 더이상 막내, 신생 팀이 아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포스트시즌에 나간다는 보장도 없다. 올해를 4강 진출의 첫해로 만들고 싶다.”

○ 팔도 사나이와 내 집 마련의 꿈

NC는 시즌 첫 경기를 KIA의 새 홈구장인 광주 챔피언스 필드에서 치렀다. 챔피언스 필드는 1000억 원 가까운 건설비를 들여 신축한 구장이다. 지난해까지 KIA가 쓰던 무등 구장은 낙후된 시설과 열악한 환경으로 팬과 선수들의 원성을 샀다. 뜻깊은 현장에 막내 NC가 초대받은 것 자체가 NC의 한층 높아진 위상을 반영한 것이다.

챔피언스 필드는 김 감독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인천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초등학교는 대구, 중학교는 부산, 고등학교는 충남 공주, 대학은 서울에서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부평초(浮萍草)처럼 돌아다닌 그였기에 안정된 둥지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심해 보인다. “광주까지 응원 온 우리 창원 팬들이 많은 걸 보고 느꼈을 것 같다. 창원에도 광주 같은 야구 타운이 생기기를 바란다.” NC는 연고지 경남 창원시가 야구단 유치의 조건으로 내세웠던 야구장 신축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NC 1군 팀은 창원에 있는 반면 2군 팀은 3시간 거리인 경북 포항에 있어 두 집 살림으로 선수 육성과 운영 등에 어려움이 많다. NC는 현재 ‘안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마산구장 옆에 구장을 신축할 것을 바라고 있다. 김 감독은 “선수와 팬 모두 편하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장을 원한다. 마산에 그런 구장이 생긴다면 경사가 된다. 야구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 부상 속에서 싹튼 미래

1977년 5월 30일자 본보 사회면에 ‘공주고 포수 중상 대전고 타자의 고의성 스윙에’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의 주인공인 중상을 입은 포수가 바로 김 감독이다. 당시 공주고 졸업반이던 김 감독은 청룡기 충남 예선에서 상대 선수가 휘두른 방망이에 머리를 맞아 실신한 뒤 5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김 감독은 그 일이 있은 후 두 달도 안 돼 다시 본보에 재등장했다. 이번에는 스포츠면이었다. 황금사자기에서 팀을 8강으로 이끈 그의 활약상을 소개한 기사에는 ‘1개월의 투병 끝에 병상에서 일어나 연습 5일 만에 출전’, ‘체중이 10kg이나 줄어 캐처를 맡기에는 무리한 여건이었지만…초인간적인 인내력’이란 내용이 담겼다.

당시를 언급하자 김 감독은 곡절 많던 과거를 털어놓았다.

“몸이 너무 안 좋아 프로 대신 한일은행을 가려 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프로 유니폼을 입고 싶어 OB에 입단했는데 1년 만에 허리 수술을 받았다. 손과 다리도 여러 번 부러졌었다.”

그는 병원을 들락거리며 오히려 내면이 강한 정신력과 독기로 채워졌다고 한다. “아픈 선수를 어떤 감독이 좋아하겠는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다른 선수가 나서는데 몇 달씩 떠난 내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약 먹고 경기에 나섰다. 뼈에 금이 가도 뛰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된다.”

덕장(德將) 이미지 속에 강한 카리스마가 감춰져 있다는 평판이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김 감독은 번트 대신 강공을 선호한다. 그 이유도 어쩌면 역경을 만나도 정면 돌파했던 지난 발자취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2시간 가까운 만남을 정리할 무렵 김 감독이 “이건 우리끼리 얘기”라며 불쑥 입을 열었다. “어젠 KIA 집들이 파티 아니었나. 져준 건 아니지만 그래야 팬들이 신나는 거 아닌가. 앞으론 다를 거다.”

그의 공언대로 NC는 이후 KIA와의 두 경기를 모두 이겨 시즌 초반이긴 해도 창단 첫 단독 1위에 나서기도 했다. ‘검은 말’의 질주는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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