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 ‘작은 새’에게 거는 기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0일 11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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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노래방에서도 찬송가를 불렀다

현재 페루여자배구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철용(56) 감독. 그는 한국 여자 배구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지도자다.

실업배구 시절 LG정유여자배구팀 감독을 맡아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슈퍼리그 9연속 우승과 92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뿐 아니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라이벌 일본과의 경기에서 18승1패로 압도적인 우세를 이끌었다.

김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는 코트에서 선수들과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지도자로서 혁혁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앙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인화 단결을 끌어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마지못해 이런 분위기에 순응하는 선수들도 있었고 종교적 성향에 대해 주위에서 비판도 많았지만 지도자와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한 눈 팔지 않고 훈련에만 몰입하니 성적은 최고였다.

당시 LG정유 선수들이 얼마나 훈련에만 열심이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일화가 있다. 비 시즌기의 토요일 여가시간에 선수들 몇 명이 호기심에 거리에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노래방을 찾았다.

주인의 안내로 처음 보는 노래방 기기 사용법을 익혔으나 정작 노래 곡목이 들어있는 책을 펼치니 아는 노래가 거의 없었다.

콜라를 먹으며 어색하게 앉아 있던 중 한 선수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다같이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가나 부르자." 이렇게 해서 이들은 반주 없이 찬송가 몇 곡을 부르고 노래방을 나왔다고 한다.

현재 국내 여자배구에는 5개의 프로팀이 있다. 1990년대에 비해 선수들의 신장이 평균 10㎝이상 커졌고 프로화가 되면서 운동 여건도 훨씬 좋아졌다.

그러나 17일 끝난 여자 프로배구는 팬들의 무관심 속에 '그들만의 잔치'로 치러졌다.

국제대회 성적 또한 엉망이다. 세계 최강의 중국은 물론 일본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가 됐고 대만 태국 등에게도 심심찮게 패하며 아시아에서도 5위권에 머물고 있다.

선수들의 체격도 향상됐고 훈련 여건도 좋아졌는데 배구 인기와 국제 대회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로 배구인들은 "선수들이 프로가 되면서 겉멋만 들었지 배구 잘하기 위한 노력 즉 훈련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요즘 선수들이 공격력은 좋은데 리시브 등 수비력이 약간 것을 보면 훈련을 안 한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며 "수비력은 훈련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는 것이고 수비력이 받쳐줘야 제대로 된 배구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올림픽 첫 메달을 따내는 업적을 이뤘다.

이 때 한국팀의 주포로 활약한 이가 바로 조혜정(57)이다. 키가 164㎝ 밖에 되지 않는 그였지만 강 훈련을 통해 64㎝에 달하는 서전트 점프력을 갖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 '나는 작은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가 15일 LG정유의 후신인 GS칼텍스 감독으로 선임돼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자 지도자가 됐다.

조혜정 신임 감독은 LG정유 92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장윤희(40)를 코치로 임명했다.

장윤희 코치 역시 신장이 170㎝로 배구 선수로는 작지만 야무진 공격으로 '아시아 최고의 스파이커'로 명성을 날린 바 있다.

조혜정 감독과 장윤희 코치. 이들이 다시 한번 배구 코트에 뜨거운 열풍을 일으켜주기를 기대해 본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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