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이야기]‘고개 숙이는 자, 리버풀 맨 아니다’

  • 입력 2009년 4월 7일 02시 54분


‘레즈(Reds)’ 리버풀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리버풀은 6일 애스턴 빌라를 3-2로 꺾은 맨유(승점 68점)에 승점 1점 차로 뒤진 2위다. 리버풀은 1989∼1990시즌 우승 후 20년 만에 선두 복귀를 노리고 있다.

리버풀은 1878년 창단한 에버턴에서 1892년 갈라져 나온 팀이다.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1959년 ‘리버풀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 샹클리 감독 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샹클리 감독은 1960년대 리버풀의 정규리그 우승과 사상 첫 FA컵, 유러피안컵 획득을 이끌었다. 1975년 리버풀을 맡은 밥 페이즐리 감독은 9년간 25개의 우승컵을 안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잘나가던 리버풀은 두 번의 고비를 맞았다. 1985년 5월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이탈리아 유벤투스와의 유러피안컵 결승전에서 리버풀 팬들이 유벤투스 서포터스 쪽으로 이동하면서 관중석이 무너져 39명이 사망했다. 훌리건의 부적절한 행동과 불안한 경기장 시설이 겹쳐진 참사였다. 4년 뒤 셰필드의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노팅엄 포리스트와의 잉글랜드컵 준결승에서도 관중석이 무너져 96명이 사망했다.

영국 정부는 힐즈버러 참사를 계기로 경기장 안전규칙을 만들었다. 잉글랜드 클럽들은 경기장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이후 영국은 가장 안전한 경기장을 만들어 축구의 질을 향상시켰다. 힐즈버러 희생자가 잉글랜드 축구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준 셈이다.

리버풀 팬들의 축구 사랑은 이런 고통스러운 과거의 경험에서 나왔다. 리버풀 팬들은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겁니다(You'll never walk alone)’란 응원가를 부른다.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겠다’며 선수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2004년 리버풀 사령탑을 맡은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리버풀의 ‘영혼’을 이끌고 있다. 터키에서 열린 2004∼2005 챔피언스리그 결승 때의 일이다. 당시 리버풀은 전반에만 이탈리아 AC 밀란에 0-3으로 뒤졌다. 베니테스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개를 숙이지 마라. 그라운드에 서는 순간 모든 선수는 고개를 똑바로 들어라. 우리는 리버풀 팬들을 위해 뛴다. 고개를 숙이는 자는 리버풀 선수가 아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자. 그럼 우리가 팬들의 영웅이 될 기회는 올 것이다.”

리버풀은 후반에 3골을 몰아쳐 3-3 동점을 만든 뒤 연장과 승부차기 끝에 우승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베니테스 감독은 최근 2014년까지 계약이 연장됐다. 연봉 500만 파운드(약 98억 원)를 받고 선수 영입에 대한 최종 결정권까지 보장받았다. 그는 세계 최고를 꿈꾼다.

15일이면 힐즈버러 참사 20주년을 맞는다. 베니테스 감독의 리버풀이 맨유를 넘어 세계 최고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랍 휴스 잉글랜드 칼럼니스트 Robhu800@ntl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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