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축구이야기]창의와 열정이 만든 한국 선수들의 승리

  • 입력 2002년 7월 1일 17시 38분


정윤수 / 축구 칼럼니스트
정윤수 / 축구 칼럼니스트
축구는 아름답다. 그라운드를 달리는 선수들의 정열적인 모습은 ‘감동적’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운 향기가 있다. 승패는 나중 일이다. 거칠지만 아름답게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선수들로 인해 우리는 낡고 진부한 삶의 어떤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갔지만 아르헨티나의 바티스투타가 그라운드에서 펑펑 흘린 눈물은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아름다운 액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은? 국가대항전에 녹다운제라는 짜릿한 속성만 빼놓고 본다면, 경기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수준높은 기억은 거의 없는 대회였다. 오직 지지 않기 위해 철저히 ‘실리 축구’로 일관했다. 특히 유럽의 강호들은 경기 외적인 분야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음으로써 정작 경기 내용에서는 조금의 진보도 이루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겨우 스페인과 아일랜드만이 그라운드에 집중함으로써 축구 팬의 사랑을 겨우 확보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베컴이 부상 중이라지만 오언 한 명을 전방에 꽂아 놓고 헤스키마저 미드필드로 내려와 무려 10명 가까이 수비에 ‘헌신’하는 잉글랜드는 과거 ‘킥 앤드 러시’가 보여준 단순성의 미학에도 미치지 못하는 압박축구의 병폐를 드러냈다. 독일은 결승전을 포함한 7경기 전체를 거칠고 지루한 경기로 일관하였다. 이 점에서 브라질의 우승은 단조롭고 거친 플레이로 결승전까지 오른 독일을 가볍게 침몰시켰다는 점에서 값진 것이었다.

유럽의 강호들은 세네갈 터키 미국 한국이 보여준 열정의 드라마에 조금도 미치지 못했다. 프랑스의 몰락은 또 무엇인가. 4년 전의 전략과 전술, 심지어 베스트 11까지 변하지 않은 그들이 세네갈과 덴마크에 일격을 당하는 것은 차라리 그들을 위해 쓰디쓴 약이 되었을 것이다. 스타의 몰락은, 물론 가슴 아프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노쇠했고 유명세에 치였으며 솔직히 자신들과 싸울 상대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브라질의 우승과 한국의 선전은 월드컵의 진로, 현대 축구의 향방을 모색하는데 있어 기준점이 된다. 유럽 강호들이 고집스레 추구한 조직력과 실리 축구를 브라질과 한국은 무너뜨렸다. 브라질은 그 탁월한 상상력과 창의적인 몸놀림으로 10명의 수비수까지 제치며 골키퍼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열적이었다. 결승전 첫 번째 골, 히바우두의 강슛이 골키퍼 칸에게 맞고 나오자 호나우두가 달려들어 가볍게 차넣는다. 어떤 사람은 “주워먹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조리그에서 결승에 이르는 동안 비슷한 상황에서 언제나 호나우두가 골키퍼에게 쇄도했음을 알아야 한다. 그는 골에 굶주렸으며 골 냄새를 맡으면 언제든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창조해가며 달려들었다.

덴마크의 공격수들을 제외한다면 그와 같은 창의와 열정이 유럽의 스타들에게는 없었다. 그저 팔꿈치로 수비수의 코를 가격할 뿐이었다.

한국 선수들 역시 열정의 표본으로 평가받을 만했다. 그들은 확실한 성취동기가 있었고 무엇에도 굴하지 않을 용기가 있었으며 지구를 불태우고도 남을 열정이 있었다. 그것이 4강 신화로 이어진 것이다. 덴마크 세네갈 미국 터키 스페인. 겨우 대여섯 나라만이 창조적 열정을 선보인 셈인데 이 가운데 한국의 빛나는 성취는 홈어드밴티지와 길거리 응원이라는 외적 요소가 아니라 오로지 첫 골에 굶주리고 승리의 열광을 목숨처럼 기다린 선수들의 열정으로 빚어진 것으로 값진 것이다.

지지 않기 위해 그 어떤 수모도 참겠노라는 실리 축구의 확실한 패배. 이기기 위해 창조적 상상력과 열정으로 뛴 선수들의 빛나는 승리. 이것이야말로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교훈이다.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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