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축구이야기]더욱 돋보인 홍명보-김남일

  • 입력 2002년 6월 10일 23시 02분


유보해야만 하는 사랑은 너무 뼈아프다. 서툰 사랑을 다 풀지 못하고 병영으로 떠나보내는 스무살 여인의 시린 가슴처럼 나는 대구월드컵경기장을 못내 빠져나올 수 없었다. 쑥스럽지만 눈물이 흘렀고, 나는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경기장 북측 상단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접지 못하는 몇 명의 붉은 악마가 익숙한 구호를 외치고 있었고 기념 사진을 찍는 시민들의 경쾌한 웃음도 이따금 터져 나왔지만 쓰린 마음은 한결같은 듯, 공허한 바람이 경기장을 쓸고 지나갔다. 이길 수 있었고 이겨야만 했던 경기였다.

아침 일찍 서울역으로 나올 때부터 나는, 말하자면 불필요한 긴장과 아주 값싼 징크스에 시달렸다. 택시는 제때 잡히지 않았고 담배 가게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으며 허겁지겁 서울역에 도착한 다음에는 예약한 기차표를 받지 못할 뻔했다. 제발, 이 모든 것이 허망한 징크스가 되지 않기를. 대구에 도착해서도 심장의 움직임이 고르지 않았으며 경기장에 들어선 뒤에도 사소한 신경질이 자꾸 나를 괴롭혔다. 그것이 전반전의 실점이 작은 원인이었다고 자책하면서 나는 쉬는 시간 동안 상단 스탠드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육체는 음료수를 원했으나 선수들은 나보다 더 힘들고 지쳐 있다고 맹신하면서 잔디만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처음 고해성사를 하는 신도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후반전에 집중했다. 뒤늦게 안정환의 골이 터졌을 때, 나는 뜨거운 액체가 내 볼을 쓰다듬으며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속절없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홍명보가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미국은 역시 완강하면서도 빨랐다. 그들의 선취점은 포르투갈전에서 이미 맛을 본 직선적인 축구의 절묘한 조합이었다. 포르투갈은 그 한방에 무너졌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홍명보가 있었다. 홍명보는 옹벽을 단단히 치면서도 미드필드 저 너머까지 진두지휘하는 늠름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김남일에게 박수를! 역시 국내 최고의 인파이터였다. 상대의 대동맥을 순식간에 끊어버리는가 하면 1선의 공격수들에게 기민한 공간을 열어주었다. 맥브라이드와 도너번은 틀림없이 김남일의 이름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안정환. 거스 히딩크 감독은 그를 ‘변속 기어’라고 불렀다. 그는 쾌속의 질주를 감행했다. 능란한 드리블로 그에게 허락된 짧은 시간을 질주했다. 어느 순간, 그는 거대한 숲 위로 솟아올랐다. 그의 머리는 상대 골문의 왼쪽 모서리를 노려봄으로써 공이 그 방향으로 정확히 빨려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인상 깊은 ‘반지의 제왕’ 세리머니에서 ‘쇼트트랙’ 동작으로 6만여명을 들뜨게 한 안정환은 확실히 탈 아시아 수준의 골 감각을 지닌 선수임을 한순간에 증명했다. 그의 탄력으로 우리는 조 1위의 유리한 고지를 유지했으며 ‘16강 진출’의 승전보를 포르투갈과의 인천대첩으로 더욱 짜릿하게 예고했다.

못다 이룬 사랑이지만 잠시 유보되었을 뿐, 오히려 꿈은 확실해지고 있다. 전후반을 거침없이 달린 선수들은 붉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그들의 움직임은 과거 우리가 보았던 그들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골을 넣던 종이호랑이가 아니었다. 그들이 상대 골네트를 뒤흔든 움직임은 세련되고 아름다운 결과들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용(龍)을 그렸다. 이제 천하를 삼켜버릴 듯한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그려 넣는 것만이 남았다. 그 거대한 벽화를 위해 나는 모든 징크스와 우울한 신경질을 모조리 버리고 6월14일, 인천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못다 이룬 사랑의 꿈을 꾸자.

스포츠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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