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스포츠]카 레이싱 속도의 향연 '폭풍의 질주'

  • 입력 2001년 7월 2일 19시 16분


어떻게 속도를 이겨낼 것인가. 현대인의 숙명이다. 아니 현대라는 세계적 규모의 발전 방향 자체가 속도와의 전쟁이다. 지금 사무실 한 켠에서 이 기사를 읽고 있다면 혹시 책상 머리를 보기 바란다.

‘당신은 지금 1분 30초를 허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시테크는 시간 단위도 참지 못한 채 분과 초를 다투면서 그것을 생산량과 월급에 대비한 가치기준으로 삼는다. 사회 전 분야가 속도와의 전쟁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빠름은 능률과 성취도가 높다는 것을 뜻하며 반대로 느림은 정체된 것, 승부에 패퇴하여 라커룸으로 실려나가는 신세를 뜻한다. 서두르다가 실수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만사를 느릿느릿 게걸음을 치는 것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패악이 된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되어도 여전히 속도에 대한 미신은 멈추지 않는 현실 아닌가. 만사가 이렇다 보니 요즘 꼬마들은 만 24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한글을 익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주행 신호가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당신 발은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그렇게 질주해봐야 다음 신호등에서 모조리 만나게 되고 결국 당신은 옆 차의 운전자를 민망하게 바라본다. 그 사람은 낭패한 표정이다. 이윽고 불이 바뀌면 이제 그 사람이 총알처럼 튕겨나간다. 과연 이 속도의 맹신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급기야 핸드브레이크를 당겨서 차량이 중심을 잃고 헛돌아 버리는 상황까지 가야만 하는가.

물론 영화 ‘폭풍의 질주’는 속도를 예찬한다. 예찬 정도가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인공 톰 크루즈는 굉음으로 질주하는 레이서이고 묵직한 조연 로버트 듀발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명조련사다. 그야말로 소실점 저 끝에서 펄럭이는 체크 깃발을 향해 천 분의 1초를 다투는 레이싱. 헐리우드의 파워맨 돈 심슨, 제리 브룩하이머의 제작에 토니 스코트가 감독한 이 영화는 감상 시간 내내 우리의 심박수를 재촉한다. 니콜 키드먼의 잡짤한 조미료 연기와 건즈 앤 로지즈, 데이빗 커버데일, 쉐어 등의 음악이 경쾌하게 들려오는 이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는 물론 우리에게 속도에 대한 성찰, 그 해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귓청을 찢을 듯한 굉음과 바닥을 움켜쥐며 달려나가는 머쉰들의 향연 속에서 우리는 속도에 대한 맹목적 추종에 대한 역설의 한 순간을 목도한다. 이 영화의 피니쉬 라인은 거기까지다.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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