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베스트 리포트]잊혀질 뻔했던 95년 ML신인상 수상자

  • 입력 2001년 5월 20일 19시 38분


이름없이 사라져 버리는 선수가 셀 수도 없이 많은 메이저 리그에서는, 한때 명성을 떨쳤던 선수가 부진과 부상을 거듭하면서 팬들에게 각인되었던 기억이 흩어져 버리는 예 또한 무시하지 못할 만큼 많은 숫자를 가지고 있다.

마티 코르도바도 그런 운명을 가진 선수가 될 뻔 했다가 올해 화려하게 재기했다. 올 시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좌익수를 주로 맡으면서 팀 타선의 주목 받는 선수들을 제치고 그가 타선의 핵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는 것이다.

'95년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데뷔한 그는 24개의 홈런과 20개의 도루로 첫 해에 20-20의 기록을 달성하면서 신인상을 수상했다(그해 내셔널 리그에서는 LA 다저스의 노모 히데오가 같은 상을 역시 받았다).

데뷔 첫해에 팀내 홈런 1위,타점 2위를 기록하면서 스타 탄생의 신호탄을 올린 그는, 팀은 비록 중부조 꼴찌였지만 같은 해 미네소타에서 투수로 데뷔한 브래드 래드키와 함께 팀의 보배로 바뀌었다.

'96년에도 그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눈 때문에 경기에 뛰지 못했던 팀의 간판 커비 퍼켓을 대신해 마티는 자리를 훌륭히 메꾸고도 남았다. 이적해 온 3,000안타의 사나이 폴 몰리터와 함께 전년도에 비해 22승이나 더 챙기는데 리더 역할을 했다.

16홈런과 111타점으로 모두 팀내 1위 자리를 지킨 그는 데뷔 년도보다 많은 타수에서 삼진수도 줄었고, 타율도 높아졌다. 첫 해 .277이던 타율이 '96년에는 .309로 올라섰다.

문제는'97년에 생겼다. 마라톤의 황영조 선수도 걸린 바 있는 족저건막염(足底腱膜炎)에 걸려 시즌을 망치고 만 것이다 슬러거 마크 맥과이어도 훌륭한 데뷔를 한 이후 줄곧 이 부상으로 고생했던 병이다. 모든 운동에서 꼭 필요한 달리기를 할 때 중요한 발이 고장난다는 것은 선수 생명에 치명타가 될 수 밖에 없다. 이후에도 회복은 됐다고 하지만 부상 당하기 전의 컨디션은 되찾을 수 없었다.

홈런 15개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타점은 51개로 떨어졌고, 타율은 2할 5푼을 못 때려냈다. 이 부상 이후 그는 항상 수비에 문제를 보이고 있다. 타격은 그런대로 쓸만한 데 주루하는데 문제가 있는 그를 필드 플레이어로 맡기기에는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말았다.

다섯 시즌을 보냈던 미네소타를 떠난 그는 2000 시즌에 토론토에서 뛰게 된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했었지만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된 이후 토론토와 1년 계약을 맺었다.여러 잔 부상도 있었고, 어깨도 계속해서 약화되는 바람에 더욱 주전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라울 몬데시가 부상당하는 바람에 겨우 경기에 제대로 출전하게 되는 백업 선수의 자리를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러나,올해는 다시 신인왕을 수상했을 때 그 모습으로 돌아왔고, 그때보다 오히려 뛰어난 타격을 보이고 있다. 한국시간 5월 17일 현재 그는 28임에 출장해 101타수 41안타라는 초반 놀라운 타격을 보이면서 .406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규정 타석을 곧 채우게 될 코르도바는 타격 수위를 놓고 레이스를 벌일 채비를 마쳤다. 그보다 현재 AL에서 더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매니 라미레즈(.409)뿐이다.한국에서는 이치로의 연속 안타가 더 관심있지만, 마티 코르도바는 5월 17일 현재 20게임 연속 안타 기록 행진을 펼치고 있다.

코르도바는 홈런 8개로 AL 10위, 타점 29개로 역시 10위를 차지하면서 클리블랜드가 초반 AL 중부조에서 친정팀 미네소타와 수위 다툼을 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타격 부문에서 팀내 3위안에 골고루 들어있고, 홈런과 타점 부문은 곤잘레스를 제외하고 팀내 2~3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코르도바와 같이 잊혀질뻔 했다 다시 그의 부활을 알린 노모 히데오 역시 화려한 메이저 리그 재출발을 올해 보였다. 메이저 리그로 오기 전부터 그는 일본 퍼시픽 리그에서 다승 타이틀을 계속 거머쥐며 순조로운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첫해 LA 다저스에 온 그는 본토 야구를 뒤흔드는, 과거 전쟁 상대국 일본의 자존심을 세우는 활약을 해주었다. '95년 28게임에 선발 등판해 13승 6패, 2.54의 성적으로 당당히 신인상을 손에 넣었었다.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빠르게 500 삼진을 잡은 투수라는 기록을 세울 때까지만 해도 그는 탄탄대로를 달리는 메이저 리거였다.

일본에서도 그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선수였었다.정상적이지 못한 듯한 투구 폼으로 인해 일본 프로야구에서 투구폼을 바꿀 의사가 없는 그를 데려 가기를 꺼려하기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폼으로는 프로야구에서 살아 남지 못한다는 진단이 나왔고, 도루는 도저히 잡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모는 사회인 야구 일본 제철에서 그는 성인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알려져 있는 포크 볼을 만들어 냈다. '88 서울 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이었던 야구에서 은메달을 조국에 바치면서 일본 프로야구가 그를 달리 보게 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일본 제철의 근거지인 오사카에 프랜차이즈를 두고 있는 긴데쓰가 그와 재빨리 계약해 화려한 그의 프로 야구 생활이 시작되게 한 것이다. 센트럴 리그에 비해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퍼시픽 리그에서였지만, 그의 활약은 비인기팀 긴테쓰 버펄로스를 팬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팀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다승과 삼진 타이틀을 매해 차지하면서 그는 행복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깨 부상이 오면서 그의 존재감도 떨어졌고, 감독과의 불화도 시작됐다. 이런 일로 인해 노모는 ‘파업 중인 메이저 리그로 적을 옮기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의 부모까지도 반대했지만 노모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은퇴를 선언해 버렸다.

일본에서만 머물 수 없는 대어가 되어버린 그는 다저스에 와서도 "토네이도"라고 불리는 독특한 투구폼이 오히려 투구의 진수라고 할만큼 새롭게 평가 받기 시작했었다. 올스타전에 출전했을 때는 매덕스의 양보로 내셔널 리그 선발 투수에 그의 이름이 오르게 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수많은 일본의 회사들은 그의 경기 모습을 보도록 출근 시간을 늦춰주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았던 그도 '98년 다저스의 12경기에서 2승 7패, 5.05의 성적으로 하락하게 되면서 저니맨 신세가 되어 버렸다. 시즌 도중에 뉴욕 메츠로 옮겼고, 그때부터 별볼일 없는 투수 취급을 받으면서 그는 평범한 은퇴전의 선수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올해 보스턴 소속으로 첫 경기를 펼친 상대 볼티모어를 노히트 노런으로 잡으면서 화려한 재기의 신호를 울렸다. 재기의 몸부림이란 말이 더 어울릴 것도 같다. 어느 팀에서 뛰는지조차도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최근에 일본에서 급격히 그의 인기는 떨어졌었고, 이치로의 메이저 리그 데뷔로 인해 그의 이름은 어느덧 추억의 스타에 들어갈 뻔했던 것을 올해 처음 등판에서 완전히 새로이 그를 인식시키게 만든 것이다. 현재까지도 그의 호투는 계속되고 있어서 4승 2패에 방어율 3.80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첫 등판 때보다는 볼넷도 많아지고 경기 초반에 강판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최근 몇 년간의 부진을 다시 떠올릴지도 모른다. 볼의 위력도 전성기 때만큼은 좋지 못하다. 그러나 그의 말없는 성격과 화낼 줄 모르는 행동때문에라도, 메이저 리그의 팬이라면 다시 성적이 부진해진다고 하더라도 기억에는 남을 것이다. 언어의 장벽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선수이지만, 그가 있었기 때문에 메이저 리그를 조금 더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신인상을 각자 차지하면서 영광으로 시작했다가 여러 요인으로 세간의 주목을 등지고 선수 생활을 이어오던 이들, 다시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어서 반갑고도 반가웠다.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회 생활을 하는 여러분들도 다시 일어설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이 두 선수가 조그만 본보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출처: http://www.hoochoo.com>

NEBRASKA@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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