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골든 글러브의 의미는?

  • 입력 2001년 12월 17일 16시 59분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골든 글러브는 KBO가 각 포지션별 선수에게 시상하는 유일한 상이다. 프로야구 처음 두 해(82,83년)에는 골든 글러브 외에 베스트 10이 따로 있었지만 84년부터 베스트 10을 폐지하면서 골든 글러브가 실질적으로 베스트 10을 대신하는 형태로 바뀌었다(사실 골든 '글러브'를 '지명타자'가 받는다는 것도 좀 웃기는 얘기이지만 여기서 얘기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골든 글러브 수상 내역을 보면 골든 글러브가 실질적인 베스트 10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아함을 표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올해의 경우는 예년에 비해서도 더 문제가 많았다고 여겨진다.

G
AB
R
H
2B
3B
HR
RBI
SB
CS
SH
SF
BB
HBP
SO
GIDP
E
BA

OBP
SLG
선수 A
130
421
66
108
13
1
24
81
21
8
6
3
91
7
121
9
9
.257
.395
.463
선수 B
127
385
54
117
16
2
7
47
8
5
14
5
40
7
52
6
8
.304
.375
.410
선수 C
122
408
60
109
18
1
8
48
9
3
8
4
24
6
53
13
9
.267
.318
.375

셋 중 하나를 고르라면 과연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대부분의 경우 당연히 A일 것이다. 그는 가장 높은 출루율과 가장 높은 장타율을 기록했고 또한 가장 많이 출장했다. 물론 대부분의 기자들은 출루율과 장타율을 보지 않지만 '전통적인' 공격 기록인 홈런과 타점에서도 압도적이다. 심지어 도루 부문에서도. 또한 A는 수비 능력 면에서도 일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낮은 타율과 많은 삼진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B를 선택할 수도 있다. B는 가장 높은 타율과 가장 적은 삼진을 기록했다. 물론 전체적인 공격 능력은 A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C보다는 확실히 낫다.

그러나 기자들의 선택은 A도 B도 아닌 C였다. 도대체 C가 뭐가 낫길래?

다들 알아차렸겠지만 이들은 포수 포지션의 골든 글러브 경쟁자들이다. A는 박경완, B는 최기문, C는 홍성흔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이 수상 요인이라고 하는데, 웃기는 소리. 원칙적으로 시즌 외 경기인 포스트시즌 성적이 골든글러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그 정도는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해야 10여 경기밖에 안 되는 포스트시즌 기록이 133경기 시즌의 기록에 영향을 줄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홍성흔의 포스트시즌 활약이 무려 165포인트의 OPS 차이를 극복할 정도였나? 그럼 한국시리즈 MVP 타이런 우즈는 왜 44포인트의 OPS 차를 극복하지 못했을까? 게다가 수원 구장은 대구 구장보다 더 타자들에게 불리한 곳이다.

또 한 가지 사례.

2000
G
AB
R
H
2B
3B
HR
RBI
SB
CS
SH
SF
BB
HBP
SO
GIDP
E
BA
OBP
SLG
브리또
103
405
65
137
26
4
15
70
3
2
3
2
31
11
55
8

12

.338

.399

.533
박진만
129
420
67
121
30
4
15
58
0
5
11
4
36
6
76
9
15

.288

.350

.486

2001
G
AB
R
H
2B
3B
HR
RBI
SB
CS
SH
SF
BB
HBP
SO
GIDP
E
BA
OBP
SLG
브리또
122
422
59
135
27
0
22
80
7
3
2
5
57
24
53
12
23

.320

.425

.540
박진만
122
383
72
115
13
0
22
63
9
6
12
3
47
4
65
13
25

.300

.380

.507

박진만이 2년 연속으로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위 기록을 보자. 누가 더 나은 선수인가는 명백하다. 지난해 박진만의 수상 이유는 '우승 프리미엄'과 출장 경기 수의 차이였다. 전자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이지만 26경기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은 만큼 어느 정도 납득할 수는 있다. 그럼 올해는?

둘은 똑같이 122경기에 출장했다. 타석 수는 꽤 차이가 나지만 타순의 차이가 꼭 능력에 따르는 것은 아니니 넘어가자. 박진만은 지난해보다 한층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실책 수는 빼고). 하지만 그건 브리또도 마찬가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올해의 브리또보다 나은 공격 성적을 올린 유격수는 이종범과 90년의 장종훈뿐이다. 수원과 인천의 구장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78포인트의 OPS 차는 결코 적지 않다. 박진만이 또다시 골든 글러브를 받은 것은 야구 자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외야수와 지명타자 부문도 마찬가지. 수상자 4명 중 당연한 수상이라고 볼 수 있는 선수는 심재학 하나뿐이다. 양준혁의 성적도 매우 뛰어나지만 그의 경쟁자는 펠릭스 호세이다(정말 호세가 외야수보다 DH로 더 많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호세는 볼 넷과 출루율에서 신기록을 세웠고 역대 최고 수준의 타격 성적을 올렸다. 시즌 막판의 사고가 그렇게 큰 문제였을까?

외야수 골든 글러브의 나머지 두 자리는 더하다. 정수근, 이병규?

G
AB
R
H
2B
3B
HR
RBI
SB
CS
SH
SF
BB
HBP
SO
GIDP
E
BA

OBP
SLG
이병규
133
542
107
167
30
4
12
83
24
8
4
3
54
4
69
10
7
.308
.373
.445
정수근
122
467
95
143
21
9
2
53
52
11
2
5
71
1
51
8
6
.306
.395
.403
데이비스
130
496
95
166
21
0
30
96
15
9
0
6
60
2
74
15
6
.335
.404
.558

구장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데이비스는 모든 면에서 이병규와 정수근을 압도한다. 이병규의 107득점과 안타 한 개, 정수근의 52도루를 빼면. 그리고 우습게도 골든 글러브는 그것들에 의해서 결정됐다. 웃기지도 않는 '타이틀'이란 것 때문에. 데이비스 외에도 김재현, 장성호 등이 종합적으로 이병규와 정수근보다 나은 성적을 올렸지만 골든 글러브는 그들을 비껴갔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번 골든 글러브의 경향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1. 타이틀 홀더 중시. 개인 타이틀을 차지한 타자들 중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한 선수는 호세와 우즈뿐이고, 그들을 제친 선수들도 모두 타이틀 홀더였다. 또한 투수 골든 글러브 수상자인 신윤호도 타이틀 3개라는 점 외에 이승호나 에르난데스, 임창용보다 나은 점을 찾기는 힘들다. 뭐 예전에도 마찬가지였으니 최소한 일관성은 유지하고 있는 셈이긴 하다.

2. '토종 선수' 선호. 이번 골든 글러브 수상자 중 외국인 선수는 아무도 없다. 브리또나 호세, 데이비스는 모두 경쟁자들보다 월등한 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수상에 실패했다. 특히 아무런 핑계거리가 없는 브리또까지 수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국내 선수 선호'보다는 차라리 '외국인 선수 차별'이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3. 인기 구단, 인기 선수 위주. 올해의 골든 글러브에서 서울 지역 구단인 LG와 두산은 합산 승률 .486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골든 글러브 수상자의 70%를 배출해 냈다. 물론 그 자체야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지만 논란이 되는 수상자 중 상당수가 이 두 팀 소속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일이다. 골든 글러브는 KBO 공인의 '인기상'이었나?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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