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우린 이제 인터넷 기업"… 종합상사 변신선언

  • 입력 2000년 3월 19일 19시 59분


삼성물산 골든게이트 문영우팀장의 명함에는 직함이 ‘벤처 캐피털리스트’라고 써있다. 종합상사맨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던 ‘수출역군’이라는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문팀장은 하루에도 10명 이상의 벤처기업 사장을 만나 투자결정을 한다. 골든게이트팀이 지금까지 투자한 벤처기업은 26개. 이 회사에는 10여명의 벤처캐피털리스가 문팀장과 같은 일을 한다.

현대종합상사 정재관사장은 15일 이금룡인터넷기업협회 회장(옥션 공동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인터넷기업협회 부회장 자리를 자청했다. 한국의 간판재벌 계열사 사장이 중소기업체 모임에 부회장으로 가겠다는 파격적인 의사를 밝힌 것은 과거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한국의 수출입국을 주도해온 종합상사가 변신하고 있다. 각 상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발표하고 있는 인터넷비즈니스 진출과 벤처투자계획은 이를 잘 보여준다. ‘환골탈태’ ‘기존 비즈니스의 최소화’ 등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결국은 기존 종합상사 기능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70년대 중반부터 30여년간 수출과 관련한 모든 업무를 담당했던 종합상사가 ‘총력수출’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빠른 속도로 업종을 전환하고 있다.

업종전환 방향은 △기업과 기업간의 전자상거래(B2B) △기업과 소비자간의 전자상거래(B2C) △벤처에 대한 직접 투자 등 3가지. 인터넷으로 새로이 창출되는 시장을 선도하는 ‘인터넷 종합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것.

최근 각 상사는 첫 B2B사업으로 화학제품거래 포털사이트개설 경쟁을 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 SK상사 LG상사 등 3개사는 화학제품 전문거래업체인 ‘켐라운드닷컴’을 설립했다. 삼성물산도 화학전문 포털사이트인 ‘켐크로스’를 설립했다 각 상사는 해외기업이 이 사이트를 통해 화학제품을 팔거나 사도록 하고 거래수수료를 받을 계획. 수산물 철강 의류 의료용기로도 B2B사이트를 확대하고 있다.. B2C의 영역에도 참여가 활발하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사이버 삼성쇼핑몰, 온라인서점인 크리센스, 인터넷 음악방송 두밥을 개설했다. SK상사는 정보통신기기 전문쇼핑몰인 클리OK와 온라인홈쇼핑업체인 디투디를 설립했다. 각 상사는 또 매년 50억∼300억원까지 벤처기업에도 투자를 할 계획이다.

삼성물산 임영학이사는 최근의 흐름을 “인터넷시대에 종합상사가 살아남으려면 종합상사의 강점인 정보력과 글로벌 네트워크, 뛰어난 인재를 인터넷시대에 맞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업종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각 상사가 내린 공통적인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인터넷종합기업이라는 새로운 업무형태는 전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모델”이라며 “불과 2년전만 해도 종합상사가 이렇게 변신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듯이 10년 후에 어떤 회사가 살아남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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