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고양이처럼 기지개 켜는 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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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시인과 촌장의 ‘고양이’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희 집 고양이 ‘보리’가 창가에서 햇볕을 쬐며 늘어지게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맛있게 하품을 한 후에 보기에도 기분 좋게 쭉 기지개를 켭니다. 이제 정말 봄이 온 모양입니다. 저도 창밖을 바라보며 따뜻한 햇살을 즐기다가, 우리 고양이를 따라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봅니다. 그런데 “아이쿠!”, 시원하기는커녕 안 쓰던 근육들을 갑자기 써서 아프기만 합니다. 고양이는 제 품에 잠시 안겨 그르렁거리더니 곧 박차고 일어나서 자기 할 일을 시작합니다. 요즘 녀석은 지구를 구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외계인, 공산주의자들, 극우주의자들, 자본가들과 법조인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 등 이 세상에 해악을 끼친다는 온갖 존재들의 위협을 확인하고 해결하고 다니느라 하루 24시간도 부족할 판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고양이’는 1986년에 발표된 노래입니다. 함춘호 씨의 일렉트릭 기타가 어린 고양이, ‘어떤 날’의 조동익 씨의 프렛리스 베이스가 나이가 들어 심드렁해진 엄마 고양이 역할을 하죠. 두 고양이는 쫓고 쫓기고, 서로 툭툭 밀치면서 놉니다. 그 위로 “너희들, 장난 좀 그만 쳐!”라고 투덜거리는 카랑카랑하면서도 달콤한 여주인의 잔소리가 피아노 가루로 뿌려집니다.

그렇게 달콤하게 끝날 것만 같던 노래가 엄마 고양이의 야무진 울음소리를 신호로 갑자기 바뀌면서, 실 뭉치 하나를 신나게 쫓아다니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은 경쾌한 어쿠스틱 리듬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노래를 들어보신 적이 없다면 꼭 한번 들어보세요. 멋진 노래입니다. 포근한 봄날 아침의 나른함이, 어쩔 수 없는, 주체할 수 없는, 푸르른 봄의 생기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음을 유머러스하게 그려주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기지개를 ‘스트레칭(stretching)’이라고 부르죠? 기지개, 혹은 스트레칭의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 스트레스를 완화해 준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은 근육을 긴장시키죠. 마음과 생각을 바꾸기는 힘들지만 행동의 변화는 그래도 조금 만만합니다. 행동으로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켜 주면 경직된 심리도 덩달아 이완되곤 하죠. 또한 기지개는 근육의 유연성을 향상시켜 줍니다. 요즘처럼 몸과 마음이 굳어지는 일이 많을 때에는 주기적인 기지개의 반복이 필요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이런 것을 ‘점진적 이완요법’이라고 하죠. 손가락 같은 소근육을 풀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허리 목 같은 대근육을 풀어주는 나름의 ‘운동’을 자주 반복하면 긴장 이완은 물론이고 유연성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근육의 유연성은 심리적 유연성으로 이어지곤 하죠. 봄 햇살을 즐기며 기지개를 켜고, 물론 처음에는 조금씩 시작해서 천천히 강도를 키워 가고,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몸과 마음의 유연성, 즉 융통성을 다시 키우시기 바랍니다. 유연성과 융통성은 이 빌어먹을,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니까요. 우리도 봄날의 고양이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죠.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시인과 촌장#고양이#스트레칭#기지개#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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