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문재인이 더민주 개혁의 걸림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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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 공천’으로 떠들썩했던 21일 오전 6시 김 대표에게 “왜 2번이냐” 문자를 보냈다. 3시간 뒤 전화가 왔다. “번호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이 사람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나를 꺾으려 한다. 정 이렇게 나오면 난 떠난다.”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는 게 금방 느껴졌다.

金밀어내기 예정된 수순

그제 저녁 1980년대 운동권 출신 40, 50대 몇 명과 만났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도 있었고 시국사건으로 투옥된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학계에 있거나 사업가로 변신한 사람들로 ‘친노(친노무현) 운동권’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이해관계가 없다 보니 친노를 향해 솔직한 ‘돌직구’ 발언들이 쏟아졌다.

“문재인 의원은 사람은 착하지만 지도자감이 못 된다.” “조국, 문성근 등 문재인이 믿는 사람들은 겸손함, 봉사정신, 품성을 단련하지 못한 관념적 운동권들이다. 더민주 집권의 걸림돌이다.” “중앙위원회에서 김종인의 비례대표안을 거부하는 발언을 한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도 파벌투쟁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참석자들이 대학 때 세칭 ‘이론가’들이다 보니 친노 운동권의 김종인 공격 배경에는 ‘헤게모니’론과 ‘통일전선 전략전술’이 있다는 말도 나왔다.

“헤게모니는 패권이란 뜻이다. 레닌, 마오쩌둥, 김일성 등이 구체화시킨 개념이다. 권력에서 중요한 건 헤게모니를 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문 의원과 주변 운동권들의 행동을 보면 이 헤게모니 이론이 연상된다.”

“통일전선 전략전술은 자체 힘이 약할 때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인사, 조직과 손을 잡은 뒤 헤게모니를 잡고 그 이후에는 그들을 가차 없이 버린다는 이론이다. 친노는 김종인도 이용해 먹고 버릴 것이다. ‘김종인 밀어내기’는 예정보다 빨랐을 뿐 예정된 수순이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떼를 지어 반(反)김종인 공세를 펼치던 친노 세력이 돌연 ‘비례대표 순번은 김 대표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게 예의’라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역해서 토할 뻔했다.”

모임을 끝내고 김 대표와 다시 통화했다. “더민주당이 변하지 않으면 집권 못 한다. 그런데 안 변하려고 한다”는 말에서 피곤과 무력감이 느껴졌다. 전화를 끊으면서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얼굴 인상마저 느끼하게 변해버린 친노들 얼굴이 스쳤다. ‘운동권 정체성’에 안주하며 30% 지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야당을 바꿔 보려는 김종인에게 저항하는 그들이 가슴속 납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운동권에서 신망을 한 몸에 받았던 고 조영래 변호사, 빈민운동가 제정구 의원 얼굴도 떠올랐다.

한 의원의 말이다. “이제 인품이 훌륭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정치를 기피한다. 좋은 사람들이 공급되지 않는다. 정치권의 품질이 떨어져 가는 이유다.” 여야의 막장 공천 과정을 지켜보며 이 말이 귓전을 때렸다.

당 정체성 바꿀 수 있을까

“당에 남겠다”는 기자회견으로 일단 종결된 더민주당 내분 사태를 보며 김 대표가 과연 친노의 저항을 뚫고 당을 개혁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비례대표 2번 셀프 공천은 노욕(老慾) 비판을 불러들인 패착이었다. 단기필마 개혁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총선을 20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당을 공황 상태로 만들 수는 없으며 아울러 긴 호흡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2번 파동으로 개혁의 동력을 잃어버린 그가 더민주당의 운동권 정체성을 바꿔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더불어민주당#김종인#셀프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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