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12>자유와 위로의 상징, 서커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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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쇠라의 ‘서커스’(1891)
조르주 쇠라의 ‘서커스’(1891)
미술의 역사에는 선구자들이 있습니다. 조르주 쇠라(1859∼1891)도 그중 한 명입니다. 서른두 살에 요절한 화가는 신인상주의의 창시자입니다. 당시 유행했던 공공 벽화를 방불케 하는 커다란 화면에 19세기 중엽 프랑스 사회를 기념비적으로 표현했지요. 특히 물감을 팔레트에 직접 섞지 않고 나란히 두어 색채 혼합을 꾀한 기법은 혁신적이었어요.

화가는 도시화, 산업화와 함께 빠르게 확산된 여가 문화를 즐겨 그렸지요. 그림 속 인물들은 공원과 유원지에서 물놀이와 뱃놀이로 휴일을 보냅니다. 카페와 공연장에서 캉캉과 서커스를 관람하며 여가를 즐깁니다. 새로운 주제는 아닙니다. 인상주의 미술도 붓으로 도시의 일상을 포착하고자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화가의 미술은 결이 다릅니다.

기하학적 화면 구성 때문일까요. 휴식과 놀이의 순간조차 질서정연합니다. 고대 벽화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정적인 분위기의 인물들 때문일까요. 행락객의 모습에 긴장감이 넘칩니다. 마냥 여유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절제된 분위기는 ‘서커스’에서도 반복됩니다.

늦은 밤 관객들이 특별한 구경을 하러 왔군요. 서커스는 새로운 볼거리였지요. 전통적인 발레나 오페라 공연처럼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관람 분위기도 자유로웠어요. 숨죽인 채 무대에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공연 도중 자리를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잡담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림 속 객석 뒤쪽에 모자를 쓴 채 앉아 있는 두 명의 관객처럼요. 게다가 무대와 객석 거리에 따른 입장료 차별도 없었지요. 상업적 유흥 공간에서 모든 계층은 잠시나마 하나 됨을 느꼈어요. 아슬아슬한 마상 쇼가 펼쳐지는 순간만큼은 자유였습니다. 일상의 시름과 속도 경쟁에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버거운 삶에서 벗어나고픈 자유와 해방의 꿈이 위로와 공감으로 바뀐 것일까요. 관계의 소원함이 깊어지는 시대, 익명성에 기반을 둔 사회관계망서비스가 새로운 소통 창구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 부담 없이 현실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답니다. 일면식 없는 누군가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답니다. 100여 년 전 늦은 밤 서커스 공연장에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던 관객들은 짐작이나 했을까요. 훗날 뉴미디어 시대의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타인들에게 주목하리라는 것을요. 그것도 나의 고단함을 달래 주고, 걱정거리를 토닥여 줄 적임자로 말입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조르주 쇠라#신인상주의#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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