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유명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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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걸그룹 포미닛 현아는 싸이와 함께 찍은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덕분에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세 번째 솔로 앨범 ‘어 토크(A Talk)’를 낸 가수 현아의 소식을 전하는 기사다. 평이한 내용이지만 이 기사에는 오류가 있다. ‘유명세를 타다’라는 표현이다. 신문이나 방송은 물론이고 일상 회화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이 표현, 뭐가 잘못된 걸까.

어떤 단어는 태생부터 쓰임이 제한되는 것이 있다. 이걸 ‘의미 자질(資質)’이라고 한다. ‘네 탓, 내 탓’의 ‘탓’의 의미 자질은 부정적이고, ‘덕, 덕분, 덕택’은 긍정적이다. ‘까닭, 때문’은 중립적이다.

‘유명세’의 의미 자질은 무엇일까.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부터 확인해 보자. 많은 이들은 ‘유명한 정도나 그런 형세’라는 뜻이니 세력 세(勢)를 쓰는 유명세(有名勢)라고 생각한다.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표현은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유명세(有名稅)가 맞다. 세금 세(稅)를 쓴다. 유명하기 때문에 치르는 곤욕이나 불편을 세금(稅金)에 빗댄 것이다. 쉽게 말해 이름값이다. 그러므로 ‘유명세를 타다’ ‘유명세를 치르다’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상황에 써야 옳다. 따라서 위 문장에서 긍정적 의미의 ‘뮤직비디오 덕분에’와 부정적 의미의 ‘유명세를 타고 있다’라는 표현을 붙여 쓴 것은 잘못된 만남이다. 이 경우엔 ‘명성을 얻다, 인기를 얻다, 유명해졌다’ 등으로 쓰면 된다. 다만, 요즘 들어 ‘유명세를 타다’라는 표현을 긍정과 부정, 어느 쪽으로 써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의미 자질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박인비는 골프 여왕에 등극한 뒤 올 들어 한층 높아진 지명도 속에 유명세까지 톡톡히 치르고 있다.’ 본보 스포츠 면에 소개된 기사다. 유명세의 의미를 정확히 짚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문장에 쓰인 ‘등극’이란 표현도 잘못 쓰기 쉬운 낱말이다. 몇 년 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대사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등극(登極)은 바로 최고의 자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말이다. 그러니 영의정, 은메달리스트, 준우승에는 등극할 수가 없다.

허나 말이란 변하게 마련. 당초 ‘첫째가는 큰 부자’라는 의미로 쓰였던 갑부(甲富)가 요즘 ‘큰 부자’ 정도로 쓰고 있는 걸 어찌하겠는가.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유명세#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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