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꽃고무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예쁜 꽃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나비처럼 가벼웠다. 기분 좋게 하루가 지났다. 선생님의 심부름까지 마치고 맨 나중에 집에 가려고 나서는데, 조금 전까지 신발장에 있던 신발이 없어졌다. 그 대신 다 해진 신발 한 켤레만 달랑 남아 있었다.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는 담임선생님에게 달려가 하소연을 했지만, 선생님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알겠다. 그만해라. 너는 집에 가서 또 사 달라 하고, 그 신발 다시 찾지 마라.”

할머니랑 가난하게 사는 그 아이가 얼마나 그 신발이 신고 싶었겠느냐고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선생님이 달래시는데 더는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는 것.

50년도 더 지난 어릴 적 이야기를 쓴 지인의 수필집 ‘사돈 반바라기’를 읽다가 가슴이 저릿했다. 친구의 신발을 훔친 행동은 도덕에 어긋나지만 선생님은 가난한 아이의 간절한 동심을 먼저 살폈다. 꽃고무신과 다 해진 검정고무신의 주인 중에서 가난한 아이의 마음을 먼저 보듬은 것이다.

내가 이런 글에 유난스럽게 반응하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나의 상처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유별나게 예민하고 조숙했던 나는 무신경하고 편파적인 선생님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선생님은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 손들어, 전화 있는 사람? 피아노 있는 사람?” 그렇게 공개적으로 가정환경을 조사해서 한 번도 손 들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것은 서면조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려 깊지 못한 선생님의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다.

해진 고무신을 신고 집으로 가면서 억울해서 울었다는 아이는 반듯한 집안의 자손답게 잘 자라서 수필가가 되었는데 꽃고무신을 가져간 그 아이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궁금하다. 친구의 꽃고무신을 신고 가면서 증거물이 될 자신의 고무신을 감출 줄도 모를 정도로 순진한 그 아이도 나중에는 알았을 것이다. 선생님과 친구가 모른 척해 주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꽃고무신을 신어도 나의 것이 아닐 때는 결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을 것이다.

신발 한 켤레가 절대적으로 소중했던 가난한 시절 이야기가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물질적으로는 궁핍하고 초라하지만 가슴이 훈훈해지는 것은 순수하고 따듯한 등장인물들 때문이다. 가엾은 아이를 대신하여 애원하고 설득하시는 선생님의 사랑이 사무치게 그립다.

윤세영 수필가
#꽃고무신#선생님#가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