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따뜻한 말 한마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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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오늘 기분 좋은 말을 들었다며 싱글벙글했다. “글쎄, 처음 만난 분인데 나더러 ‘책 보다 나오셨나 봐요’라고 하더라.” 지적(知的)으로 보인다는 말을 참 독특하게 표현했다고 감탄하면서 나는 한껏 고무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 한마디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돈 안 드는 말’이라고들 하면서도 막상 좋은 말에 인색하다. 기왕이면 긍정적으로 기분 좋게 말하면 좋으련만 대부분 사소한 시비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말 한마디에서 기인할 때가 많다. 일찍이 우리의 지혜로운 조상님들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하셨는데, 그 속담은 동서고금에서 통하는지 신문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프랑스 니스의 한 카페에서는 커피 7유로, 커피 플리즈 4.25유로, 헬로 커피 플리즈 1.40유로라는 가격표를 붙여 놓았다고 한다. 우리 식으로 고치면 “커피(줘)!”라고 반말하는 사람에게는 1만 원을, “커피 주세요∼”라고 예의 바르게 말하는 사람에겐 6000원을,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상냥하게 말하는 손님에겐 2000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기발한 가격표를 만든 카페 주인은 손님들이 종업원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보고 그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결국 그 카페에서는 말만 예쁘게 하면 똑같은 커피를 5분의 1 가격으로 마실 수 있는 셈이다.

세월호 침몰로 우울했던 지난 한 달여 동안 우리는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자기 자리에서 물러나는 고위직 공무원, 언론인, 대학교수를 보았다. 수십 년 걸려 이르렀을 그 자리를 단칼에 베어버린 그들의 말 한마디는 평생 쌓은 자신의 명예까지 베고,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 생채기를 남겼다.

말은 사람의 향기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향이 독하면 곁에 가까이 두기 어렵다. 반대로 화려하지 않아도 향기가 좋으면 그 꽃을 방 안에 들여놓게 된다. 선운사에서 본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는 푯말은 꽃을 꺾지 말라든지,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보다 얼마나 은은하고 시적(詩的)인지 ‘아니 온 것처럼’ 다녀가려고 저절로 몸가짐을 조심하게 만들었다.

같은 말도 독하게 내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누구를 내 안에 들여놓겠는가. 말이 곧 인품이다.

윤세영 수필가
#좋은 말#인품#종업원#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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