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세계적 대학 없는 교육입국은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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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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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에서 71억8000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미국을 상대로 해마다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무역 이외에 유학생 변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 학생은 10만3889명이었다. 대부분 대학생, 대학원생들이다. 이들이 학비 생활비 등으로 1인당 연간 5만 달러(약 5800만 원)씩 한국에 있는 집에서 가져다 쓴다고 추정하면 모두 50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 자동차와 삼성 휴대폰을 열심히 팔아 번 돈을 고스란히 유학비용으로 내놓고 있는 셈이다.

세계 젊은이 끌어들이는 미국의 힘

학업을 마친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에 남아 일하는 경우도 흔하다.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이 지난해 재미(在美) 과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0%가 귀국을 꺼리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에 한국 학생들은 스스로 돈을 싸들고 찾아오고 졸업 후에는 미국 사회를 위해 힘을 보태주는 기특한 젊은이들이다.

한국 학생뿐 아니다. 중국 인도가 10만 명 이상씩 미국에 유학생을 보내놓은 상태이고 일본 캐나다도 이 대열에 가담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영국의 더 타임스는 영국의 고교 졸업생들이 미국 대학으로 진학하는 두뇌유출 현상이 심각한 단계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국제교육연구소(IIE)는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소비하는 돈이 연간 178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이 막강한 ‘블랙홀’의 중심에는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대학들이 있다. 지난해 10월 영국의 더 타임스가 발표한 세계 대학 평가에서도 미국 대학들은 최상위권을 휩쓸었다. 최고의 대학을 찾아 각국 젊은이들이 미국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대학을 더 강인하게 만들면서 위기에 빠진 미국 경제에도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인 브라운대의 루스 시먼스 총장이 “미국의 힘은 대학 경쟁력에서 나온다”고 단언한 그대로다.

역(逆)발상으로 접근한다면 우리도 미국 대학에 감탄만 하고 있지 말고 세계적인 대학을 키워내면 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개교한 지 19년밖에 안 되는 홍콩과학기술대는 지난해 더 타임스 평가에서 세계 35위에 올랐다. 서울대는 47위였다. 홍콩 당국은 이 대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다. 이처럼 대학과 국가가 하기에 따라 단기간에도 대학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교육과 관련해 여러 정책이 나왔다. 그러나 사교육 입시제도 등 초중등교육 대책뿐이었고 대학을 어떻게 육성할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대학의 생명인 자율권을 해치는 정책이 많이 나와 정부가 ‘세계적 대학’에 과연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정부도 더 큰 과제를 보라

우리가 만약 세계적 대학을 보유한다면 고질적인 교육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 미국에도 명문 대학이 존재하지만 입시가 덜 치열한 것은 뛰어난 대학이 많아 전체적인 경쟁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세계적인 대학이 여럿 생기게 되면 입시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입시경쟁이 완화되면서 사교육비는 감소할 것이다. 또 해외 유학 대신에 국내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학생이 늘어나 외화 수지가 개선되고 인재의 해외 유출도 줄어들게 된다. 국가경쟁력은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세계적 대학 확보는 우리 현실에서 만병통치약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제 3년 임기를 남긴 현 정부는 입시제도에만 매달려 있지 말고 앞으로는 대학 육성에 매진해야 한다. 한국 대학들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들의 변신을 돕는 일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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