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산책]김성규/페미니즘도 한단계 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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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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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수업 때 일이다. 주제는 사회주의와 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이었고 내가 발제를 맡게 됐다. 논문에 ‘남성은 여성 지배를 위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만들어놓았고, 그 틀 안에서 여성은 남성의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들끼리 경쟁하며 그 과정에서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외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진화론의 눈으로 본다면 남성과 여성은 모두 상대 성에게 선택받고자 경쟁하는 존재이며, 유독 여성만 경쟁에 내몰려 소외받는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괜찮은 논쟁거리가 되겠다 싶어 진화론의 관점에서 논문을 반박하는 발제를 했다.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거의 모든 토론 참가자가 나를 비판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어떻게 남성 배우자를 선택하느냐는 지적이었다. 진화론은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인간의 문화와 사회제도의 역할을 간과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자연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남녀 간의 권력 갈등을 은폐해 남성 지배를 정당화하려 한다는 말도 있었다. 진화론을 혼자서 방어하느라 진땀을 뺐다.

내가 겪은 일은 페미니즘과 진화생물학의 오래된 갈등이 재연된 데 지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전통적으로 주류 과학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과학이 남녀 간 성차를 이용해 남녀차별을 정당화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시각은 아니다. 실제로 초기 진화론자나 우생학자를 비롯해 여러 과학자가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 역사적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거치면서 진화론 자체가 진화했다. 이제는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남녀관계의 본질을 탐구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제 국내 페미니스트도 과학에 토대를 둔 논쟁을 펼칠 때가 됐다. 당장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실을 삼켜야 할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보양식이 되리라 믿는다.

김성규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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