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공화국 60년에 50명의 국무총리

  • 입력 2007년 7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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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008년은 1948년에 탄생한 대한민국의 갑년이다. 한 해 뒤에 태어난 독일연방공화국은 후년인 2009년에 환갑을 맞는다.

한국의 건국이 독일보다 1년 앞서니 나잇값으로도 그동안 배출한 권력자의 수가 좀 많다는 건 봐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불과 1년간 제2공화국의 인테르메초(간주곡)를 빼면 건국 이래 대통령중심제를 내내 유지해 왔고 독일은 재상(宰相·Kanzler·칸츨러) 중심의 의원내각제를 견지해 왔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실패한 대통령중심제의 제1공화국 바이마르 체제와 대비해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성공한 오늘의 독일 제2공화국 체제는 흔히 ‘칸츨러 데모크라시’(재상 민주주의) 체제라고 일컫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독일에서는 재상이 ‘대권’을 장악하고 있다.

정부 수립 이후 한국에서는 일곱 명의 대통령(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이 대권을 장악했고 거기에 실권이 없었던 윤보선 최규하 대통령과 허정 권한대행을 보태면 10명이 된다. 그에 비해 독일에서는 오늘의 현직까지 포함해서 모두 여덟 명의 재상이 등장했다.

각계 원로들 캠프 참여 줄이어

같은 기간 독일에서는 아홉 명의 상징적인 국가원수를 추대해 왔다. 한편 독일의 대통령보다는 행정의 실권이 좀 더 있어 보이는 한국의 국무총리는 공식적으론 한덕수 현직 총리가 제38대! 여기에 여덟 명의 국무총리 ‘서리’와 5·16군사정변 직후 군정시대의 ‘내각수반’ 네 명까지 합치면 정부 수립 60년 미만에 50명의 국무총리를 양산한 꼴이 된다. 아무리 나이가 하나 위기로서니 저쪽에선 대통령과 재상의 수가 아직도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는데 이쪽에는 총리가 이미 반백(半百)이란 건 좀 지나치다.

게다가 올해 말에 대선을 치르고 나면 현재의 선거전 양상으로 보아 다음 정부도 국무총리를 양산할 싹수가 보인다. 그건 한나라당이 집권을 해도 그럴 것이고,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가칭)이라는 ‘도로우리당’이 재집권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직 유력한 대선후보의 윤곽도 잡히지 않은 여권의 경우는 제쳐 두고 여기선 야당인 한나라당의 경우만 보자.

이른바 ‘빅2’라고 하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엔 정관계, 언론계의 관록 있는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걸 보고 나는 순진하게도 처음엔 든든하고 흐뭇하게 생각했다. 조명을 받고 있는 두 후보보다 나이도 지긋하고 정계에 투신한 지도 오래된 경험 풍부한 이들 원로가 몸을 낮춰 젊은 대권 주자의 막료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 자칫하면 과열되고 혼탁해지기 쉬운 어지러운 경선 싸움에서 이들 원로가 큰 판을 읽고 무슨 일이 있어도 대국을 망쳐 버리진 않도록 버팀목이 돼 줄 것으로 기대됐던 것이다.

대선후보 경선도 일단은 선거전이요, 선거전인 이상은 작아도 싸움판이다. 그러니 젊은 운동원들은 싸움에는 승리 이외의 어떤 대안도 없다고 여겨 (큰 판을 깨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오직 승리에만 집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 경선은 어디까지나 올겨울의 본선에 나갈 대선후보를 고르는 당내 예비 선거이다.

당 밖에 있는 관전자에겐 너무나도 명백한 이 사실이 당 안에 있는 예비 후보의 주변에는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두 캠프에 자리 잡은 원로의 식견이요, 충언이고 대국을 판독하는 그들의 역할이다. 그들은 젊은 운동원처럼 싸움의 전위에 나선 선동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싸움을 진정시키는 조정자 구실을 해 줘야 한다. 그것이 기대됐기에 지금은 실망이 크다. 특히 그들의 일부가 싸움의 진두에 서서 편 가르기의 전위로 나선 꼴을 보고….

차기 정부도 총리 양산 불보듯

궁극적으로는 12월 대선에서 당 밖의 라이벌과 싸워 본선에서 이겨 정권교체를 하는 것이 야당의 목표다. 그런데도 당 안의 라이벌과의 예비전에서 이미 너 죽고 나 죽자는 사생결단의 싸움에 기진맥진해서 대국을 그르친다면…? 그걸 철없는 젊은 운동원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도대체 경험과 지혜가 많은 원로는 뭘 보고 젊은 후보의 캠프에 합류했다는 말인가. 스스로 대통령 될 생각은 못하고 시시한 장관 자리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을 점잖은 나이에….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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