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제완]과학분야에도 기부의 손길을

  • 입력 2007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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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돼지의 이미지처럼 둔하지만 넉넉하고 푸근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넉넉한 마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로는 가난한 이웃을 돕는 연말의 자선냄비, 못 배운 한을 달래 보려고 구멍가게에서 푼푼이 모은 돈을 아낌없이 장학금으로 내놓은 할머니, 평생의 노력으로 이룬 기업 주식의 대부분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장학재단을 설립한 노신사의 이야기, 어려운 병마와 싸우는 어린이를 돕는 모금 운동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대기업 역시 기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8000억 원이 넘는 거금을 내놓았고 현대차그룹 역시 많은 돈을 기부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 돈이 없어 못 배우는 젊은이가 없도록 장학사업을 벌이고 젊은이의 배움터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기부문화는 후진성을 면하지 못했다. 지원액의 대부분을 불우이웃돕기, 장학금 및 학교 건물 건축에 사용한다. 미국에도 가난한 이웃을 돕고 어려운 학생을 돕는 기부문화가 있다. 그러나 더 큰 기부는 인류 전체가 잘살기 위한 쪽으로 더 많이 지원된다.

철광산업의 거부였던 카네기가 설립한 카네기재단은 20세기 초 세계 최대의 망원경을 건설하는 비용을 지원했다. 현재 세계 최대의 광학망원경으로 미 캘리포니아천문학연구회가 운영하는 켁 망원경은 켁재단의 기부로 만들었다. 빌게이츠재단은 한국에 설치된 국제백신연구소에 1000억 원을 지원했다. 록펠러재단도 과학 연구에 많은 지원을 한다.

기금이 13조 원으로 빌게이츠재단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인 하워드 휴스 의료재단은 연간 4500억 원이란 거금을 생명을 위한 연구에 지원한다. 이 재단의 본부는 워싱턴에 있다. 건물이 너무나 작고 초라해 가로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간판이 워낙 작아서 이웃에 사는 주민조차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를 정도다. 숨어서 말없이 지원하는 이 재단을 생각하면 존경심이 생긴다.

이런 재단의 지원 철학과 동기는 다양한데 성공 가능성이 10% 이하인 연구에만 지원하기도 한다. 가능성이 적어 다른 재단에서 지원받기 곤란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인류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분야를 골라서 연구비를 지원한다.

불우이웃을 돕고 젊은이에게 장학금을 주고 대학에 건물을 지어주는 일은 분명히 세상을 좀 더 밝게 하고 살맛나게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과학 분야 연구에 기부를 하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난치병을 고치고 더 풍요로운 삶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줄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많은 부분을 서양과학의 성과에 무임승차했다. 수출효자 종목인 반도체, 자동차 및 조선 산업의 경우 서양과학이 개척한 기초과학을 토대로 해서 쓰기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 돈을 벌고 있지 우리가 기초를 마련한 적이 없다.

인류의 장래에 기여하는 과학기술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부하는 문화가 있어야만 우리 손으로 시작한 기술이나 상품으로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다. 거창한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세계화를 실천하는 길이다. 기부문화도 좀 더 선진화해서 이런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가끔 세상이 왜 이럴까라고 반문한다.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며 왜 이 세상이 그렇지 않으냐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반문하고 불만을 갖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황금돼지의 해를 맞이해 과학 분야에도 기부하는 풍토가 생기기를 꿈꿔 본다.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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