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현인택]中强國 실현위한 성찰 아쉽다

  • 입력 2005년 3월 17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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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정부가 들어선 지난 10여 년 동안 국가전략 차원의 중심적 화두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중심 국가’이다. 표현과 내용에 다소 차이는 있으나 현 정부를 비롯해 지난 두 정부 모두 국가의 비전을 동북아 중심 국가로 잡았다. 과연 한국이 현재의 국제적 위치에서 볼 때 ‘중심’ 국가 지향이 전략적으로 가능하며 타당한가에 대해 학계에서 그간 많은 논의가 있었다. 개념의 적실성에 대한 논란은 분명히 있으나 그 내심에서 지향하는 골자는 결국 강국(强國)이라는 점에서 보면 여기에는 이견(異見)이 없다. 국가의 비전은 원대해야 하고, 그것이 장기적 목표를 담아내는 것이라는 데서 중심 국가 이상의 것이 비전이 돼도 좋을 것이다. 다만 논란의 초점은 그러한 비전이 자칫 동북아 지역 국가들로부터 오해를 사 실제로 우리가 목표로 하는 통일한국의 달성과 이 지역에서의 ‘중심적’ 역할에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하는, 전략적 관점에서의 우려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펴보아야 할 문제는 목표와는 별개로 지난 10여 년 동안 그러한 비전에 실제로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섰느냐 하는 사실 여부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몇 가지 지표에서 보면 우리는 오히려 중심 국가의 반대 방향으로 퇴행했다.

▼멀어지는 ‘동북아 중심국가’▼

중심 국가 지향의 가장 중요한 토대는 경제적 기반이다. 우리가 그나마 이만한 경제를 이루지 못했다면 감히 어떻게 그런 발상이나마 했을 것인가. 그러나 지난 10년 한국 경제는 절대적 차원에서는 성장했으나 지역 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 힘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네 나라 중에서 일본을 제외한 세 나라의 경제 성장은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일본은 경제침체로 고통을 받았으나 우리와의 격차는 여전히 크고, 중국은 어느새 바로 우리 등 뒤에 와 있다. 우리는 한때 경제적 자신감으로 중국을 심리적으로 극복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중국발 ‘경제 쓰나미’가 언제 한국을 덮칠지 모르는 상황이 돼 버렸다.

국내 응집력 또한 국가 발전의 중요 요소 중 하나다. 한국은 지금 퇴행적 국론 분열과 합의 부재로 극심한 내적 응집력의 와해 위기를 맞고 있다. 지역, 세대, 이념에서 국론이 완전히 분열되는 국가 정체성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고 있다. 각 정당은 너무도 당파적이며 정치적 이해득실만이 그들의 정치 행보를 지배하고 있다. 국론 분열을 치유할 시민세력도 미약하고 정당과 시민세력, 국민을 다독거릴 수 있는 원로그룹도 부재한 실정이다. 이런 분열적 민주주의로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국가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적 환경도 더 열악해졌다. 중국과 대만 사이의 양안(兩岸) 갈등, 일본의 우경화, 북한 핵문제 등으로 동북아 국제관계의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한국이 이뤄야 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호의적 국제환경을 만들어야 함은 불문가지다. 한미동맹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외치는데도 지금 한미 간의 간극은 과거보다 오히려 더 벌어져 있다. 한국이 결정적 순간에 누구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과거 서독이 우리보다 못해서 미국의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실현 가능한 국가비전 요구▼

미래는 어떠한가. 소수의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만이 힘겹게 수레를 끌고 있는 경제, 이미 상당히 벌어져 조기 치유가 가능할지조차 의문인 국가의 내적 응집력 결핍, 북핵 문제 등으로 향후 이해가 더 첨예해질지 모르는 한미관계가 우리의 냉엄한 현실이다. 거기에다 정치권은 이미 알게 모르게 다음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 어젠다에 모든 것을 ‘다걸기(올인)’ 할 태세다. 국가적 비전 실현을 위해 우리가 정녕 기댈 데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중심 국가는 아니라 할지라도 한국이 지금보다 강력한 중강국(中强國) 정도를 비전으로 삼고 실현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을 것이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 지도자와 정당, 시민세력, 그리고 국민이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이라도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현인택 객원 논설위원·고려대 교수·국제정치 ithyu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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