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장영란]산골에 찾아온 ‘인터넷 선물’

입력 2006-03-28 03:00수정 2009-10-0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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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봄맞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마른 풀을 걷어 내며 여기 무슨 나무를 심을까 생각을 하는데 택배 차가 온다. 택배 아저씨가 상자를 전해 주었다. 어제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이다.

우리 동네는 ‘무진장’(전북 무주 진안 장수군) 산골에서도 산막이라 불리는 마을이다. 우리 마을에도 지난해 여름, 인터넷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인터넷이 있으면 좀 더 편리하겠지 정도로 생각했다. 그 전엔 원고 하나 보내려고 해도 면 소재지까지 차를 타고 나가야 했으니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인터넷은 편리함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우리에게 가져다주고 있다. 우리 동네 자연을 그날그날 인터넷에 올려 전국에 있는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겠다 싶어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러다 보니 날마다 자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논밭에서 일하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잠깐 짬을 내 산길을 거닐 때도 있다. 뭐든 날마다 꾸준히 하는 덕을 본다. 양지꽃이 피면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자연의 기운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엿볼 수 있다. 더 열심히 농사하게 되고, 자연에 한발 다가서려 노력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 삶도 많이 바뀌었다. 열아홉 살 큰애는 인터넷이 연결되자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친구가 전국에 쫙’ 깔렸단다. 외진 산골이다 보니 사귐이 한정될 수 있는데, 인터넷 덕에 폭이 넓어지고 있다. 열두 살 작은애는 한동안 게임에 빠져 지내더니 인터넷으로 조금씩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며칠 전에는 무주 골프장 도시를 반대하는 규탄대회에 다녀와 그 현장 사진을 자기 플래닛에 올렸는데 사진 설명이 간결하면서도 힘 있다. 10년 전 우리가 산골로 내려올 때가 떠오른다. 도시라는 세계에서 동떨어진 어딘가로 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당시 산골은 현대문명의 혜택이 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인터넷이 연결되니 산골은 그렇게 동떨어진 곳이 아니다. 산골에서도 이 세상 한가운데를 살 수 있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듯 귀농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여는 귀농학교에 갔더니 수강생 가운데 ‘농촌에서 자기 전문성을 살려 직장을 가지고 살고 싶은’ 분들이 있었다. 이제는 귀농을 한다고 지금까지 하던 일을 다 버리고 농사일을 배워 그걸로 생계를 삼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연에서 살면서도 해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 아이들 말이 이제 도시의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산골의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양다리를 걸칠 수 있게 되었단다. 물론 아직도 농촌은 외지고 문화 혜택이 적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가 사라져 옆 마을 청년회 회장님이 올해 환갑이란다. 하지만 마당 있는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텃밭을 가꾸고 새소리 들으며 자기 일을 할 수 있다면…. 산골 마을에도 젊은이가 들어와 살 수 있으리라.

장영란 농부·자연칼럼니스트

※장영란 씨는 전북 무주군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을 썼고, 자연에서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를 담은 책자 ‘자연의 아이들’(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www.nat-c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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