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열린마음 열린세상]누가 이 아버지를!

  • 입력 2003년 3월 5일 20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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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포성 속에 태어난 그는 피란지에서 갓난아기 시절을 보냈다. 전쟁은 아버지를 쓸어갔고 모자에게 남긴 건 폐허 속의 굶주림뿐,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일념밖에 아무 생각이 없었던 소년 시절, 그는 용케도 지금의 회사에 사환으로 취업이 되었다. 죽어라고 일했다. 휴일은커녕,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었다. 말이 사환이지 회사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잡부였다. 사장 비서역까지 맡아야 했으니 직원들은 그를 부사장으로 불렀다. 모두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가내공업으로 출발한 회사 규모가 점점 커져 나갔다. 무역부도 생기고 제2, 제3 공장이 증설되었고 회사로서의 체제가 갖추어졌다.

▼사환→계장→아파트장만→늦장가▼

한데 그럴수록 부사장의 입지가 난감해졌다. 그간 회사의 배려로 야간고등학교는 마쳤지만 정식 직급은 아직 계장이었다. 그나마도 창업 공신에 대한 예우에서였다.

대졸 신입사원 앞에 서면 기가 죽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아파트도 장만하고 서른 후반에 늦장가도 들었다. 딸이 태어나던 날, 부끄럼도 잊은 채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이런 걸 사람들이 행복이라 부르는가 보다.” 일생 처음이자, 그리고 마지막인 행복의 순간이었다.

딸만은 최고로 키워야겠다, 학력, 특히 영어 때문에 설움을 받게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해 무리를 해서 조기 유학을 보냈다. 모녀가 떠난 자리엔 공허함도 남지 않았다. 매달 닥치는 학비 송금에 정신이 없었다. 월급 선불, 빚도 얻어야 했다.

‘기러기 아빠’의 외로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딸의 성장한 모습이 보고 싶어 미국을 찾아갔다. 반가웠다. 그러나 자기가 생각하는 한국의 딸은 아니었다. 이게 아닌데…. 앞자리 모녀가 영어로 지껄이는데 뒷자리에 우두커니 앉은 그로선 할 말이 없었다. 길을 아나, 영어를 아나, 그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영어 설움을 딸한테 받아야 하다니, 휴가 기간을 앞당겨 착잡한 심경으로 귀국해 버렸다.

설상가상, 회사엔 구조조정의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차 조정에서 겨우 살아남게 되었지만 나간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리고 다음은 누구? 초조, 불안, 직원들간의 신경전, 모두가 40대 후반인 자신의 용퇴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나갈 수도 없는 딱한 처지였다. 배운 것도 없는데 재취업이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눈 질끈 감고 눌러앉아 있는데 드디어 올 게 왔다.

아, 퇴출이라니! 내 청춘을, 아니 전 인생을 바쳤던 회사인데! 배신감, 분노, 패배감, 창피, 당황, 정신뿐 아니라 영혼까지 황폐화되어가는 자신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퇴직금으로 빚 청산, 아파트를 팔고 원룸에 세를 들었지만 송금 날짜가 되면 눈앞이 캄캄했다. 딸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내가 귀국했다. 아니, 이럴 수가!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아내는 울지도 않았다. 아내는 보험설계사로 바쁜 나날을 시작했다. 둘의 관계가 전혀 옛날 같을 수 없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아내 뒷바라지,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술뿐이었다. 회사 시절 사업상, 그리고 막중한 스트레스에 쫓겨 마셔야 했던 게 이젠 원한의 술잔이 된 것이다.

그가 정신과를 찾은 건 이 무렵이었다. 50대 초반에 칠십 노인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중증 우울증에 화병이었다. 아무런 의욕도, 기력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딸아이가 마약 중독으로 응급 입원을 했다는 것이다. 병원비는커녕 갈 여비도 없었다. 기력도 없거니와 영어를 못하는 그가 가본들 할 일도 없었다. 직장 때문에 바쁘지만 아내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며칠을 굶었던지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 그는 이미 탈진상태였다.

▼기러기아빠→퇴출→우울증→간암▼

거기에다 간경화에 간암, 수술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게 이 딱한 아버지의 최후였다. 병실에 옛 직장 동료들이 놓고 간 주스 몇 병만이 그의 쓸쓸한 임종을 지켜 볼 뿐이었다. 과로, 과음, 정신적 황폐, 이건 가히 만성 자살이었다.

우리 역사상 굶주려 본 마지막 세대, 죽어라고 일하다 죽어간 세대, 그들에게 40대는 지옥 그 자체였다. 일생을 바쳐 이룩한 회사로부터 쫓겨난 울분과 패배의 세대, 인생 100년의 겨우 전반전을 마치고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던 미완(未完)의 세대. 모든 사람이 매달려 살면서도 비판과 힐책만 할 뿐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듣지 못한 세대.

그는 갔다. 잘 살아 보자고 이를 악물고 뛰었던 그는 갔다. 정녕 이렇게밖에 보낼 수 없었을까. 우리 모두는 물어야 한다. “아, 누가 이 아버지를?”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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