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천안함 水兵 애도’ 촛불은 왜 안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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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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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의 원조는 2002년 6월 경기 양주에서 길 가던 여중생 효순이와 미선이를 미군 장갑차가 치어 숨지게 한 사고를 규탄하는 시위였다. 운전 부주의로 교통사고를 낸 미군 병사들에게 군사법정의 배심원단이 무죄 평결을 내리자 광화문에서 ‘촛불시위’가 처음 등장했다. 효순이 미선이 촛불시위는 날이 갈수록 확산돼 2002년 대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6년에는 경기 평택시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범대위)’를 구성한 52개 단체 가운데 33개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대위에 참여했다. 범대위는 다시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를 일으켜 석 달 동안 서울 도심을 점거하고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를 사지절단 환자로 만들었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진보연대 민족문제연구소 가톨릭농민회 등 37개 단체가 이달 초 ‘천안함 사고에 대한 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문’을 내고 ‘북 공격설이 근거 없다’는 강변을 쏟아냈다. 이 공동회견에 참여한 사회단체들은 2년 전 ‘광우병 촛불’로 광화문을 뒤덮었던 단체들과 기막히게 일치했다.

가해자 감싸고 피해자 책임 추궁

37개 단체는 ‘군 당국이 북(北) 공격설을 앞장서 유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보 장사를 하고 영구미제 사건으로 처리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회견문에서 천안함 수병(水兵)들에 대한 애도의 표현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첫째 요구는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해군총장 등 지휘책임자를 파면하라’는 것이었다. 천안함 사건 당시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을 지휘한 7함대가 갖고 있는 모든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는 요구도 곁들였다. ‘외부 폭발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정황이 속속 지적되고 있다’며 어뢰를 쏜 가해자를 감싸고 한국과 미국의 책임을 추궁하는 논리를 이어갔다.

2년 전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이들은 공동회견문 모두에서 ‘천안함 사건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상식에 기초하여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거나 오판(誤判)과 왜곡선동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모양이다. 광우병 촛불시위는 ‘객관적 과학적 상식’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對)국민 사기극이 아니었던가.

한때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질병도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전달(전염)경로가 규명되고 치료약이 개발되면 소멸해간다. 1986년 광우병이 최초로 발생해 18만 마리의 소가 감염되고 170명이 ‘인간 광우병’인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으로 사망한 영국에서도 3∼5년 안에 광우병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도 미국인 2억 명의 주식인 쇠고기를 한국인들이 먹으면 광우병에 더 잘 걸릴 것처럼 과장 왜곡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에 가보면 쇠고기 진열대를 차지한 면적은 호주산이 미국산보다 훨씬 더 넓다. 광우병 촛불시위의 여진(餘震)이 일부 소비자의 인식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수입 쇠고기 점유율을 보면 호주산이 50.5%로 가장 높고 미국산이 33.3%, 뉴질랜드산이 15.2%다. MBC ‘PD수첩’의 과장 왜곡 보도와 ‘청산가리’ 운운하는 거짓 선동이 판을 쳤음에도 다수의 한국인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미국의 언론매체도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있고, 선거 때만 되면 민주 공화 양당이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인다. 낙태, 총기 소지,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 전 국민 건강보험 같은 문제에서 보수와 진보로 쫙 갈라진다. 하지만 국가안보와 관련한 사안에선 좌우의 구분 없이 초당파적으로 대처한다.

어뢰를 맞고 두 동강 난 천안함에서 산화한 46용사는 한명 한명이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대한민국의 사랑스러운 자제다. 그들의 빈자리는 부모 아내 그리고 자녀들에게 평생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동원과 쇼에 능한 촛불좌파들은 효순이 미선이 때는 촛불을 들면서 왜 천안함에서 순국한 수병들을 애도하는 촛불은 켜지도 않는가. 만약에 천안함 수병들을 수장시킨 집단이 북한이 아니고, 인터넷 괴담처럼 독수리훈련 중이던 미군이 오폭으로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면 서해가 온통 촛불로 뒤덮였을 것이다.

촛불좌파의 일편단심 북한 사랑

촛불좌파 37개 단체는 ‘북 공격설이 근거 없다’고 주장했지만 천안함 연돌에서 화약 성분이 검출됐고 알루미늄 파편 조각도 중요한 단서다. 잠수정을 타고 서해에 숨어 들어와 우리 해군 배에 어뢰를 쏘고 달아날 집단이 달리 누가 있단 말인가. 북한을 지목하는 데는 복잡한 방정식이나 고난도의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촛불좌파는 북한 앞에만 서면 ‘객관적 과학적 상식’도 무시하고 초보적인 상상력조차 작동을 멈춘다. 촛불좌파의 이른바 ‘진보성’이 어디에 기반을 둔 것인지 정말 의아스럽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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